한국은행이 다음 주 외자운용원 신설을 계기로 보수적인 외환보유액 운용을 탈피하는 것을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외자운용원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원장 등 외부전문가 영입을 고려하고 있으며, 직접 투자 확대도 신중하게 모색하고 있다.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한은이 장기적으로 미국 국채에 집중된 외환보유액 운용 방식에 변화를 줄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운용 수익을 늘리기 위해 투자 방향을 급격하게 바꿔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외자운용원 내주 신설…개방성.전문성.자율성 강화
23일 한은에 따르면 한은은 다음 달 4일께 외자운용원을 설립할 예정이다.
현행 외화자금국을 확대개편해 신설되는 외자운용원은 산하 부서가 종전 2개에서 3개로 늘어나고 국(局)에서 원(院)으로 격상되는 만큼 자율성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 대내외 공모를 통해 원장과 간부 직원을 선발하고, 이 경우 원장이 경제연구원장 수준의 대우를 받게 돼 개방성과 전문성도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은은 외자운용원의 전문성을 고려해 직원의 순환근무 주기를 늘리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한은 관계자는 "외자운용원장을 외화자금국장이 겸임하지만, 추후 전문성과 명망이 있는 분이 있으면 외부에서 초빙할 수 있다"며 "직접투자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관련 외부 전문가를 추가 채용할 여지도 있다"고 말했다.
◇외환보유액 운용 행태 변화
전문성과 자율성이 강화된 외자운용원이 신설되면 한은의 보수적 외환보유액 운용 행태에 변화가 생길 것으로 예상된다.
외환보유액 규모가 커진데다 운용 조직에 자율성과 개방성이 주어지는 만큼 예전보다 수익률이 강조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운용기획과 리스크 관리, 위탁 등을 담당할 외자운용기획부가 신설되는 점이 이러한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규모는 2008년 말 2천12억달러에서 지난달 말 2천960억달러로 47% 급증하면서 사상 첫 3천억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외환보유액 구성 비중은 국채와 정부기관채 등 유가증권이 91.9%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중 미국 국채의 비중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외환보유액이 어느 정도면 적정하다고 컨센서스가 모인 것은 없지만, 어느 정도 유동성을 확보했다면 조금 더 고위험(하이리스크) 수익 사업을 할 수 있지 않으냐는 의견도 있다"며 "외자운용원은 이러한 가능성에 대비한 틀(프레임)을 만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은은 조직 인사, 운용 측면에서 자율성이 강화됐다고 해서 투자 방향이 독립적이고 직접적으로 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익성보다 안전성을 우선시하는 현재의 운용 원칙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른 관계자는 "달러화 외에 엔화, 유로화 등으로 투자를 다변화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추진할 부분이며, 비중이 적은 금 투자도 고려하고 있다"면서도 "외자운용원 신설 후에도 안정성과 유동성이라는 기본 투자 원칙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 전문가 반응 엇갈려
외자운용원 신설을 계기로 한은이 보수적 투자 방식에서 벗어날지와 관련해 국내외 전문가 반응은 다소 엇갈렸다.
외국계 해외투자은행(IB)들은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이 지나치게 많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한은이 미 국채에 집중된 투자방식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크게 봤지만, 국내 전문가들은 한은이 고위험을 무릅쓰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외국계 IB 관계자는 "한은이 외화자산 운용 조직 개편으로 직원들의 해외 투자 전문성을 기르고 나아가 위탁 중심의 운용에서 직접.독립투자 방식으로 방향성을 잡아나갈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 "조직 개편이 이뤄짐에 따라 미 국채에 집중된 운용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며 결국 달러 비중을 줄이고 유로화, 엔화는 물론 위안화까지 투자 비중을 늘릴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와 함께 대체투자 확대에도 주목하면서 "당장은 어렵더라도 전통적인 투자방식이 아니라 부동산, 원유나 원자재, 금, 구조화상품 투자 등에 나설 가능성 역시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고 조심스럽게 관측했다.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의 시각은 조금 달랐다.
외환은행 경제연구팀 서정훈 박사는 "외환보유액이 많아지면서 기회비용을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기는 하지만, 한은이 고위험 부담을 안고 투자에 나선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서 박사는 "기축통화국이 아닌 우리나라로서는 늘 (외화유동성 부족) 대비가 필요하다"며 "이 때문에 결국은 위험부담이 적은 안전자산을 통한 투자를 택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장보형 연구위원은 "외자운용원 신설은 외환보유액이 많이 늘어남에 따라 이를 제대로 운용할 필요성이 생겼기 때문"이라며 "하지만 운용 수익을 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