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에서 한데 뒤섞여 다투던 몇몇 사람(국가)이 ‘사다리’를 타고 지붕(선진국)에 먼저 오르더니, 툭! 사다리를 걷어찼다. 세상인심 참 야속하다 탓할 겨를도 없이 지붕 위에서 아래(개발도상국)로 “올라와 함께 살려면 ‘더러운(?) 옷’부터 벗으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들이 걷어찬 사다리는 ‘무역 관세 부과와 유치산업 보호 같은 경제 진흥 정책·제도’였다. 물리기가 쉬워 국가 재정에 큰 도움이 되는 관세를 수출입 기업과 상인에게 부과하고, 수준이 낮아 국가가 보호하지 않으면 치열한 국제 경쟁에 견딜 수 없는 유치(幼稚)산업을 보호하는 것 등이다. 그들이 벗으라고 요구하는 더러운 옷은 ‘자유무역을 거스르는 모든 것’을 두루 포괄한다. 해외 무역에 관한 국가의 간섭이나 보호, 말하자면 관세 같은 것이다. 결국 몇몇 선진국은 자신이 밟고 오른 ‘사다리’를 ‘더러운 옷’이라 꾸짖는 셈이다.
지은이의 넓고 깊은 통찰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나 ‘더러운 옷’은 기자의 저급한 경제 현상 분석능력이 부른 소치다. 지은이가 2007년 작 ‘나쁜 사마리아인들(Bad Samaritans)’에서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의 3대 악당으로 꼽은 세계무역기구(WTO)·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이 개발도상국을 향해 부르짖고는 하는 게 ‘더러운 옷’에 닿았다고 하겠다. 사다리를 걷어찬 이들의 낯이 얼마나 두꺼운지는 이 책 ‘사다리 걷어차기(2002년, 한국판은 2004년)’에 널렸다.
18세기 후반 산업혁명에 힘입어 자국 기술력이 (다른 나라보다) 압도적이었던 영국은 19세기 중반까지도 산업장려 정책을 지속(52쪽)했다. 미국이 강력한 산업력을 바탕으로 삼아 무역을 자유화하고, 자유무역의 정당성을 지지하기 시작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불과(64쪽)했다. 또 자국 유치산업을 보호하고 외국 숙련 노동인력(기술)을 빼돌렸으며 다른 나라의 특허권·상표를 계획적으로 도용하는 등 도둑질을 일삼던 이(선진국)들이 하나씩 차례로 파수꾼이 됐다(124쪽). 선진국 대열에 오른 뒤 자유무역을 주장하고 노동인력 유출을 막았으며 특허권·상표를 강력히 보호한 것이다.
특히 ‘자본주의 황금기’라는 1950년부터 1973년까지 여러 선진국의 경제가 높이 성장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적극적인 재정제도, 완숙해진 복지제도, 더욱 엄격해진 금융시장 관련법규, 조합주의적 임금협상제도, 투자조정제도” 덕분이었다. 프랑스와 오스트리아의 경우에는 ‘산업 국유화’도 꼽혔다. “이런 제도들이 보다 나은 거시 경제와 금융의 안정, 더 나은 자원 배분, 더 평화로운 사회를 가져와 현 선진국의 고속 성장을 도왔다는 것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사실(240쪽)”이 됐다. 또 “적극적 산업·무역·기술 정책이 때로는 관료적 형식주의나 부정부패로 변질될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정책의 사용을 전면적으로 금지해서는 안 될 것(257쪽)”이다.
이제 관건은 시간.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시차(時差)! 선진국 뒤를 좇는 국가의 압축 발전이 부를 수 있는 폐해, 즉 시민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과 잇속에 빠른 몇몇 군인·고위공무원·기업의 등장 등을 적절히 규제하는 게 열쇠다.
아직 읽지 않았는가. 읽은 뒤 깊이 생각해보고 말하자.
장하준 지음. 형성백 옮김. 부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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