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중순 경기도 평택시 포승읍에 위치한 만도 평택공장. 흰색 모자를 눌러 쓴 외국인 10여 명과 회사 관계자 10여 명이 조용한 기계음만 들려오는 브레이크 잠김방지장치(ABS)와 차체자세제어장치(ESC) 생산라인을 따라 걸음을 옮기다가 멈춰섰다.
"시설이 상당히 현대적이고 깔끔하게 설계돼 있네요. 기대 이상입니다."(크리스티앙 반덴헨드 RNPO 대표)
"이 회사는 국내 완성차뿐만 아니라 GM, 포드, 스즈키 등 유수 기업들에 핵심 부품을 납품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써 봐서 아는데 실력이 있는 곳입니다."(김형남 르노삼성차 구매본부장)
일본 2위 자동차그룹 닛산이 2013년에 한국 부품을 전체 부품 조달 물량의 10%까지 늘리기로 했다. 액수로는 2조원 규모다. 지난해 닛산이 사들인 한국 부품이 500억원어치에 그쳤으므로 3년 새 40배로 확대하는 것이다.
연간 100조원이 넘는 자동차부품을 사들이는 세계 4위 자동차그룹 르노닛산 구매책임자 일행이 최근 르노삼성 협력업체 10여 곳을 둘러보고 내비게이션, 멀티미디어 등 전자장치뿐만 아니라 조향ㆍ제동ㆍ현가장치 등 핵심 부품 구입 의사를 밝혔다.
1999년 지분 교환 형태로 얼라이언스를 맺은 르노닛산그룹은 글로벌 부품조달 기구인 `RNPO(Renault-Nissan Purchasing Organization)`를 운영 중이다.
RNPO는 매년 초 프랑스와 일본 본사에서 회의를 열고 연간 구매전략을 짠다. 이번에는 반덴헨드 RNPO 대표를 비롯한 핵심 구매담당 임원 20여 명이 한국에서 관련 회의를 연 것이다. 이들은 만도뿐만 아니라 경남 김해에서 차체를 만드는 카테크, 내외장재를 만드는 동원테크, 부산 존슨콘트롤즈동성, 오산 오토리브 코리아 등 10여 곳을 일주일에 걸쳐 꼼꼼히 둘러봤다. 이들 기업은 200여 개 르노삼성 협력업체 중 평가가 우수한 곳들이다.
특히 일본 닛산의 관심이 대단했다. 일본 닛산은 2012년 양산 예정인 신차 프로젝트에 한국 부품업체 27곳을 참여시키기로 결정하는 등 한국을 단순한 부품기지 차원 이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형남 구매본부장(전무)은 23일 "닛산의 경우 엔고와 지리적 이점 등을 감안해 한국 부품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중국과 인도산 부품이 값싼 임금을 무기로 세력을 확장하고 있지만 가격 대비 품질 측면에서 한국산만한 대안이 없다는 평가가 공감대를 얻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엔고가 장기화하면서 한국산 부품은 일본산 대비 20%의 가격경쟁력을 확보한 것으로 분석된다. 닛산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규슈공장을 중심으로 한국 부품을 조달할 계획이다. 사실 콧대 높은 프랑스인이 주류인 르노닛산 구매담당자 일행이 대거 한국을 방문한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김 본부장은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닛산 등 글로벌 기업들이 한국 품질수준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선 `상전벽해`에 가까운 평가를 받고 있다"면서 "수출단을 꾸려 나가는 것보다 직접 눈으로 생산설비 등을 보여주는 게 낫다는 판단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현재 르노삼성차 협력업체 200곳 중 지난해 RNPO를 통해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에 공급하는 물량은 82개사 690억원 규모로 2009년 28개사 120억원에서 크게 증가했다.
[매일경제 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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