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덕의 정보통신부 그시작과 끝]<37>신규사업자 허가신청서 접수

PCS와 국제전화 등 7개 분야 신규통신사업자 선정을 위한 허가신청서 접수가 시작된 1996년 4월 15일, 각 컨소시엄들이 정보통신부에 관련서류를 접수하고 있다.
PCS와 국제전화 등 7개 분야 신규통신사업자 선정을 위한 허가신청서 접수가 시작된 1996년 4월 15일, 각 컨소시엄들이 정보통신부에 관련서류를 접수하고 있다.

 1996년 4월 15일 월요일.

 노란 개나리가 화사한 미소를 보내는 싱그러운 아침 출근길이었다. 새봄의 향기가 물씬 났다.

 그러나 서울 종로구 세안빌딩 정보통신부 주변은 팽팽하게 당긴 활시위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아침 6시가 조금 지나자 정장차림의 젊은 직장인들이 자동차에 서류박스를 싣고 정통부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람과 차량들로 인해 정통부 주변 일대는 금세 북새통을 이뤘다.

 이들은 문민정부 최대 이권사업이라 불린 신규통신사업자 허가신청서를 접수하러 온 통신업체 직원들이었다.

 이날 첫 번째로 정통부에 도착한 업체는 TRS사업을 신청한 한진글로콤이었다. 한진글로콤은 오전 9시경 가장 먼저 접수번호를 받아 주차장에 있던 서류를 화물엘리베이터에 실어 정통부 21층 대회의실로 옮겼다.

 정통부는 이날부터 3일간 PCS와 국제전화, TRS 등 총 7개 분야 27개 신규통신사업자 선정을 위한 허가신청서류를 접수했다. 정통부는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선착순으로 신청기업들로부터 허가신청서를 받았다.

 첫날인 15일에는 국제전화, PCS, TRS 및 CT-2(발신전용 휴대전화) 전국사업, 무선데이터, 전기통신회선설비 임대 등 6개 분야 업체들이 신청서를 제출했다.

 둘째 날인 16일에는 TRS 및 CT-2 지역사업(수도권, 강원권, 대전·충남권, 충북권), 무선호출 분야에 대한 신청서를 접수했다.

 마지막인 17일에는 TRS 및 CT-2 지역사업(대구·경북권, 부산·경남권, 광주·전남권, 전북권, 제주권)에 대한 허가신청서를 받았다.

 실무를 담당한 이규태 통신기획과장(정통부 감사관, 서울체신청장 역임, 현 한국IT비즈니스진흥협회 부회장)의 말.

 “정통부에서 가장 장소가 넓은 곳이 대회의실이었습니다. 그래서 대회의실에서 선청서를 접수했어요. 사업자별 접수 일자는 서류분량을 감안해 조정했습니다.”

 정통부는 혼잡을 피하기 위해 지하 주차장에서 도착 순서대로 사업자에게 방문증을 발급했다. 이어 21층 대회의실로 올려보내 서류를 접수토록 했다. 정통부는 사업자당 출입인원을 4명 이내로 제한했다.

 정통부는 이날 최재유 사무관(현 방송통신위원회 통신정책국장) 등 15명으로 PCS, TRS, CT-2 전국사업, 국제전화, 무선데이터, 전용회선 임대사업 등 5개 분야별 접수창구를 마련했다. 1개 접수대에 3명의 직원을 배치했다.

 사업계획서는 △허가신청법인에 관한 사항 △영업계획서 △기술계획서 △기술개발, 연구개발 및 인력양성 계획서 △중소기업 육성·소프트웨어 산업 지원계획서 및 자금조달방식·도덕성 관련 자료 △요약문 등 모두 6권이었다.

 정통부는 첫날 LG텔레콤과 한국통신을 비롯한 총 19개 업체의 신청서를 접수했다. 오전에 11개 업체가, 오후에 무선데이터통신 분야의 지오텔레콤(진로) 등 8개 업체가 서류를 냈다.

 사업자들은 4단 파일박스에 서류를 담아 간이손수레를 이용해 접수창구로 서류를 옮겼다.

 재벌 간 ‘통신대전’이라 불린 PCS분야의 통신장비 제조업군에서는 LG텔레콤이 가장 먼저 서류를 제출했다. LG정보통신의 장형만, 이우성 부장이 허가신청서를 접수했다.

 LG그룹의 PCS사업책임자인 정장호 LG정보통신 사장(LG텔레콤 사장·부회장,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장 역임, 현 마루홀딩스 회장)의 증언.

 “서류를 접수하기 전 사무실에서 직접 점검을 했습니다. 혹시 때라도 묻을까봐 흰 장갑을 끼고 서류를 한 장씩 넘기면서 이상 유무를 확인했어요. ‘사업자로 선정되게 해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통신장비 비제조업군인 한솔-데이콤 연합컨소시엄인 한솔PCS와 효성-금호 연합컨소시엄인 글로텔이 그 뒤를 이었다.

 PCS와 CT-2 전국사업자로 사실상 확정된 한국통신은 오후 2시40분께 느긋한 표정으로 1만5000쪽 분량의 허가신청서류를 제출했다. TRS 전국사업 참여업체인 기아도 3시 10분께 허가신청서류 접수를 마쳤다.

 삼성-현대의 연합컨소시엄인 에버넷과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현 중소기업중앙회)의 컨소시엄인 그린텔 등도 신청서를 제출했다.

 박재하 금호텔레콤 사장(청와대 국방비서관, 모토로라코리아 사장·부회장 역임, 현 모토로라코리아 고문,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의 기억.

 “글로텔은 비상사태에 대비해 소화기까지 차량에 준비했습니다. 사업계획서를 정통부로 옮기는 과정에 혹시 불이라도 날까 해서였지요. 차량이 지나는 도로에 자체 교통요원까지 배치했어요. 전날 서울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밤새 사업계획서를 인쇄했습니다. 오·탈자를 막고 보안유지를 위해 최선을 다 했습니다. 정통부 접수현장에도 나갔습니다.”

 정통부는 본문 분량을 350쪽(전국사업자)으로 제한했다. 지역사업자는 250쪽 이내며 요약문은 20쪽이었다. 이는 1992년 제2 이동통신사업자 선정 때 사업계획서 분량을 사전에 제한하지 않는 바람에 제출서류를 대형트럭으로 실어오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이 과장의 기억.

 “1개 사업자에게 서류를 10부씩 복사토록 했습니다. 서류분량이 엄청났어요. 그런데다 취재열기가 대단했어요. 취재와 카메라 기자들이 뒤엉켜 접수현장은 난장판이었습니다.”

 서영길 정통부 공보관(SK텔레콤 부사장, 티유미디어 사장 역임, 현 세계경영연구원 창조경영연구소장)의 말.

 “정통부 출입기자는 30명 미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정통부가 신규통신사업자 선정방침을 발표한 이후 언론의 취재열기가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그 무렵, 출입기자는 80여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정통부 직원들은 업체당 평균 1만3000쪽에 달하는 서류를 일일이 확인해 이상이 없으면 허가신청서류 점검표에 서명을 했다. 1개 사업자당 40여분이 걸렸다.

 서류량이 가장 많은 사업자는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그린텔이었다. 서류는 3만5332쪽에 달했다. 다음이 한솔PCS로 2만6000여쪽이었다. 에버넷은 2만1000여쪽에 달했다. 글로텔은 2만600여쪽, LG텔레콤 2만여쪽이었다.

 그린텔은 사업계획서 제출에 앞서 사업권 획득의지를 강조하기 위해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회관에서 박상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장(16대 국회의원 역임), 성기중 PCS사업단장(한국소프트델니시스 사장·부회장 역임) 등 기협중앙회 임직원 3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업계획서 제출 출정식을 가졌다.

 박 회장은 출정식에서 “전 중소기업들이 일치단결하여 그린텔이 기필코 PCS 사업권을 획득하도록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성기중 단장의 회고.

 “사업권 획득에 대한 개미군단의 확고한 의지를 다지는 자리였습니다. 컨소시엄 참여업체가 1만4000여개에 달하다보니 서류가 다른 사업자보다 2배가량 많았어요. 출정식이 끝나자 곧장 트럭에 서류를 실어 정통부로 떠났습니다. 정통부에 가서 접수현황을 지켜 봤어요.”

 정통부가 3일간 신청서를 접수한 결과, 7개 분야에 27개 사업자를 놓고 모두 52개의 참여 희망 컨소시엄들이(한국통신 복수신청 제외) 허가신청서를 제출했다.

 국제전화 분야에서는 롯데·일진·해태·한라·고합·동아·대륭정밀·아세아시멘트 등 8개사와 한국전력의 연합컨소시엄인 한국글로벌텔레콤이 경합업체 없이 단독 신청했다.

 TRS전국사업 분야에서는 아남텔레콤, 기아텔레콤, 동부텔레콤, 한진글로콤 등 4개 컨소시엄이 신청서를 접수시켰다.

 무선데이터통신 분야에서는 대한펄프가 대주주인 대한무선통신, 한국컴퓨터가 대주주인 한컴텔레콤, 고려아연이 대주주인 에어미디어, 한보그룹 컨소시엄인 한국무선데이타통신, 진로그룹의 지오텔레콤, 인테크산업이 대주주인 인테크무선통신 등 6개업체가 참여했다.

 전기통신회선설비 임대 분야에는 대한송유관공사가 대주주인 지앤지 텔레콤과 삼보컴퓨터와 한전의 연합컨소시엄인 윈네트 등 2개 컨소시엄이 신청서를 냈다.

 이 과장의 회고.

 “신청서를 접수해 놓고 보니 대회의실이 꽉 찼어요. 온통 서류더미였습니다.”

 가장 치열한 경합을 보이고 있는 분야는 수도권 무선호출사업으로 6 대 1의 경쟁률이었다. 그 다음이 5 대 1의 경쟁률을 보인 수도권 TRS사업자였다.

 정통부는 신청서 접수를 마친 후 각 업체들이 제출한 △허가신청법인에 관한 사항 △영업계획서 △기술계획서 등 사업계획서 6권과 정보통신발전기술개발지원계획서(출연금)에 대해 1~2개월간의 심사기간을 거쳐 6월에 사업자를 선정한다고 밝혔다.

 허가심사는 1차 자격심사와 2차 출연금심사 등 2단계로 실시하며 2차 심사 시 출연금이 같을 때는 1차 심사 점수순으로 최종 사업자를 선정키로 했다.

 1차 심시기준은 △전기통신역무 제공계획의 타당성 △기술개발실적 및 개발계획의 우수성 △기술계획 및 기술적 능력의 우수성 △허가신청법인의 적정성 △허가신청법인의 재정적 능력 △전기통신섭리 규모의 적정성 등 6개 사항에 대해 21개 항목이었다.

 새로 선정할 사업자는 PCS분야 3개, 무선데이터통신 분야 3개, 국제전화 분야는 1개, TRS와 CT-2는 전국사업자 각각 1개와 지역사업자 9개(TRS)∼10개(CT-2)였다. 무선호출 신규사업자는 수도권에 한해 1개, 전용회선사업은 희망지역별로 사업자수에 관계없이 적격업체를 선정키로 했다.

 통신사업자들의 사업계획서 제출은 시작에 불과했다. ‘사업권 획득’이라는 승전고를 울리기 위해 통신사업자들은 2라운드 경쟁을 벌여야 했다. 그 결과는 예측불가였다. 사업자 선정을 놓고 통신사업자들의 긴장은 최고조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