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달러화가 아니라 유로화와 같은 이종(異種) 통화 환율 변동이 더 중요한 경영 변수다. 유로화가 강세로 가느냐, 약세로 가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연 매출 30조원 규모인 삼성전자 TV사업부를 이끌고 있는 윤부근 사장은 최근 "올해 원ㆍ달러 환율을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을 받고 "유로화 변동이 더욱 신경 쓰인다"고 말했다.
미국 달러화가 기축통화 기능을 하고 있는 글로벌 체제에서 세계 전자업계 1위인 삼성전자가 유로화로 고민을 하는 이유는 뭘까.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지출과 수입 간 `통화 미스매칭(불일치)` 때문이다.
TV 등 제조 과정에 소요되는 부품ㆍ재료는 달러로 사오지만 유럽시장에서 완제품을 판 돈은 유로화로 받는 데서 오는 고민이다. 유로화가 약세를 보이면 유로화로 받은 돈을 달러로 환산했을 때 가치가 줄어들어 수익성도 악화된다.
최근 유로화 가치는 유로당 1.37달러 정도로, 지난해에 비하면 강세를 띠고 있지만 포르투갈이 구제금융을 신청할 가능성 등으로 유럽 경제위기 불씨가 살아나면서 유로화 약세 염려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소비자를 상대해야 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다시 고민이 깊어졌다.
이런 현상은 특히 유럽 시장 판매비중이 높은 TV와 휴대전화 등에서 많이 나타난다.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은 이미 지난해 2분기 유럽 경제위기로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유럽 재정위기로 유로화 가치가 유로당 1.2달러대로 추락했고 TV 수익성이 악화되는 암초에 직면한 것.
전성호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전무는 "패널 등 TV 관련 부품은 대개 달러로 구입하는 반면 TV 완제품에 대한 대금 지급은 현지 통화로 이뤄진다"며 "최대 판매처인 유럽에서는 유로화로 TV 대금 결제가 이뤄진다"고 말했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전체 TV 매출 중 38.5%를 유럽에서 달성했으며 이는 북미 시장 의존도(28.1%)를 크게 웃돈다. 특히 전체 삼성전자 매출에서 유럽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26% 수준이지만 TV사업부는 유럽 의존도가 훨씬 높다. 그만큼 유로화 리스크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TV 재료비 50~70%가 패널 비용이며 이는 주로 한국ㆍ대만ㆍ중국 업체들에서 달러를 주고 사온다.
삼성전자는 유로화 가치가 하락해도 구매심리나 유통업체와 관계를 고려할 때 제품 값을 올리기 힘들다. 또 부품업체들이 달러를 선호하고 대금 지급 계약도 달러로 해놨기 때문에 이를 임의적으로 유로화로 바꾸기도 어렵다.
전성호 전무는 "최근 유로당 달러화 가치가 1.37달러 수준으로 유로화가 강세를 띠고 있지만 올 한 해 유로화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며 "유로화 약세에 대비한 경영계획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홍승모 신한은행 금융공학센터 차장은 "유럽 경제 펀더멘털을 고려했을 때 기업들이 유로화 약세에 대비한 전략을 세울 필요가 있다"며 "다시 유로당 1.2달러대로 떨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LG전자 사정도 삼성전자와 비슷하다. LG전자는 주력 시장으로 삼고 있는 유럽에서 TV 매출 중 30% 정도를 올리고 있어 유로화를 항상 주시하면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LG전자도 작년 2분기 유로화 약세 때문에 TV 수익성에 타격을 입었다.
TV와 함께 유로화에 민감한 상품이 휴대전화다. 휴대전화도 TV와 마찬가지로 주요 부품은 달러로 결제하고 유럽에서 판매한 완제품 대금은 유로화로 받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휴대폰 8000만대를 팔았는데 이 중 유럽에 공급된 게 2570만대나 된다. 북미 시장 판매는 1570만대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최근 주력 품목으로 내세우고 있는 프리미엄 스마트폰을 국내 구미공장에서 생산한다. 따라서 유럽에서 스마트폰 판매가 늘어날수록 유로화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특히 삼성전자는 올해 노키아를 제치고 유럽 휴대폰 점유율 1위를 달성한다는 목표도 세워놨기 때문에 유로화에 더욱 신경을 쓴다.
LG전자는 작년 4분기 판매한 휴대전화 3060만대 중 11%를 서유럽에서 팔았다. LG전자는 작년 2분기 휴대전화 부문에서 4년 만에 적자를 기록했는데 이런 실적 악화 원인 중 하나가 유로화 약세였다고 시장에서는 평가한다.
삼성전자나 LG전자 등은 유로화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부품대금을 유로화로 결제하거나 환헤지 등을 고려하고 있다. 특히 이들 업체가 해결책으로 가장 공들이는 방안이 `유로화 리스크를 유럽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즉 부품 조달이나 제품 생산을 현지에서 함으로써 지출도 자연스럽게 유로화로 하는 방식이다. 제품 판매로 들어오는 수입과 부품 조달ㆍ비용 등으로 나가는 지출 통화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LG전자 관계자는 "유럽 생산법인 등 현지 조달 시스템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통해 환율 움직임에 대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매일경제 황인혁 기자/김규식 기자/최순욱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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