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란의 추억`일까, 감독당국의 지나친 조심성일까. 김종창 금융감독원이 2002년 신용카드 대란의 재연을 우려하는 경고 메시지를 잇달아 보내 카드업계 주변 상황과 영업실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 원장은 7일 최근 분사한 KB국민카드를 포함해 7개 전업 신용카드사 대표들과 조찬간담회를 가졌다. 그는 이 자리에서 "최근 카드시장 및 대내외 금융경제 여건을 감안할 때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카드사 간 부가서비스 경쟁 심화, 수수료 인하 등으로 신용판매 부문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위험이 큰 카드론 및 리볼빙서비스 증가 폭이 확대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의 지난해 말 기준 집계에 따르면 6개 전업카드사의 전체 이용실적은 517조4000억원으로 카드대란 직후인 2003년 말 517조3000억원을 약간 웃돌았다. 2003년 말 28.3%까지 치솟았던 연체율은 지난해 9월 말 기준 1.83%로 안정된 수치를 보였다. 문제는 결제 리스크가 높은 카드론이다.
2005년 8조원에서 꾸준히 증가 추세를 보이는 카드론은 2009년 소폭 감소했으나 지난해 23조9000억원으로 42.3% 급증했다.
신용카드 사용액의 일정 금액만 결제하고 나머지는 상환을 연장하는 리볼빙 서비스 중 결제가 안 된 잔액도 매년 늘어나 지난해 5조5000억원에 달했다. 현금서비스와 카드론, 리볼빙 결제 잔액은 신용카드 대출에 속한다. 가계대출이 증가해 경기가 악화될 경우 대규모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문제가 커질 수 있다는 우려다.
김 원장은 "신용카드 대출은 본질적으로 서브프라임(비우량) 대출로 신용위험이 크다"며 "기준금리가 추가 인상될 경우 연체율이 상승하고 카드자산의 부실이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카드대출이 아닌 카드 사용건수도 크게 늘고 있다. 한국은행이 집계한 지난해 말 현재 신용카드 발급장수는 1억1659만장으로 전년 대비 9% 증가했다. 경제활동인구 1인당 4.8개의 신용카드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하루 신용카드 이용실적도 1593만건으로 2009년에 비해 19.2% 늘었다. 하루 평균 결제금액도 1조4000억원으로 5.9% 증가했다.
감독당국은 신용카드 시장이 확대일로인 이유를 카드사들의 영업경쟁 때문으로 보고 있다.
신용카드 모집인은 지난해 말 5만명으로 전년 대비 30% 증가했고, 총수익 대비 마케팅비 지출비율도 25.4%에 달해 전년 대비 4.8%포인트 상승했다.
김 원장은 이날 신용카드사의 과도한 영업경쟁에 대해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신뢰할 만한 카드사가 길거리에서 고객을 모집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인데 아직도 그런 회사가 있다고 한다"고 우려했다.
이날 회의에서 일부 카드사 대표들은 새로 영업경쟁에 뛰어든 KB국민카드가 카드고객 모집을 위해 국민은행 대출 시 대출금을 포인트로 상환해 주는 금융선포인트 제도를 실시함으로써 다른 카드사들도 이에 동참해 경쟁을 과열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업계는 경쟁이 격해졌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위험성은 다소 과장됐다는 의견이다.
지난 2003년 카드대란 당시 가장 큰 문제는 무분별한 고객 모집이었다. 신용등급이 낮은 고객에게까지 카드가 발급되고 이에 따라 현금서비스 부실이 늘어나게 됐다는 것. 하지만 업계는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고 반박한다. 모객 활동이 늘어난 것은 사실일지 몰라도 카드 발급 자체가 엄격하게 진행돼 위험성이 훨씬 덜하다는 주장이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본업인 신용판매와 카드론 등 대출업의 비중이 5대5로 정해져 있으므로 이 규정만 지켜진다면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상당히 작다"고 말했다.
최근 급속도로 늘어나는 리볼빙 역시 우려할 수준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재 리볼빙 잔액은 5조4000억원 선으로 추정되는데 아직 안정적인 수준이라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리볼빙 역시 저신용자에게는 혜택이 주어지지 않는다" 고 강조했다.
[매일경제 이창훈 기자/최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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