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박막 태양전지에 관심을 보이냐고요? 중국을 보세요. 결정형에서는 이미 게임이 끝난 거나 마찬가집니다.”
국내 기업들이 박막 태양전지 투자를 늘리는 이유에 대해 한 태양광 장비 업체 관계자가 한 말이다. 중국 기업들이 완전히 주도권을 장악한 결정형 시장에 뛰어들기보다는 무주공산이나 다름없는 박막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국내 기업의 박막전지 사업현황과 과제를 짚어본다.
박막 태양전지는 당장은 주류가 아니다. 지난해 전 세계 태양광 시장의 80%는 박막이 아닌 결정형 태양전지가 차지했다. 결정형은 폴리실리콘으로 만든 태양전지로 국내에서도 현대중공업이나 LG전자·신성홀딩스·미리넷솔라 등 주요 태양전지 업체들이 생산하고 있다.
그러나 박막 태양전지는 가격이 저렴하고 활용방안이 많다는 고유의 장점 덕분에 시간이 갈수록 결정형을 대체하는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태양광산업협회(EPIA)는 지난 1월 펴낸 ‘솔라 제너레이션 6’ 보고서에서 박막형의 시장점유율을 2015년 30%, 2020년 39%로 예상했다.
박막 태양전지는 제조 원료에 따라 종류가 매우 다양하지만 현재 사용하고 있거나 이른 시일 안에 상용화가 가능한 것으로 비정질, CdTe, CI(G)S, 염료감응형(DSSC)이 있다.
비정질 실리콘 박막 태양전지는 ‘아몰포스 실리콘(a-Si)’이라고도 불리며 폴리실리콘 가격이 폭등했을 때 인기를 누렸으나 지금은 효율이 개선되지 않으면서 성장세가 주춤한 상태다.
카드뮴텔룰라이드(CdTe)는 지난해 세계 시장의 13%를 차지할 정도로 박막형 가운데 가장 경쟁력이 강하지만 카드뮴 독성 문제로 미국 이외 지역에서는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구리·인듐·갈륨·셀레늄(CIGS) 전지는 효율 면에서 경쟁력이 가장 강하고 적용 범위가 넓다는 점에서 향후 주류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염료감응형은 현재 삼성SDI·동진쎄미켐·이건창호·다이솔티모 등이 상용화 기술을 개발 중이다.
“10대 기업은 모두 박막 태양전지 사업을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국내 대기업들은 태양광 사업 중에서도 박막전지에 애착을 보이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12월 프랑스 생고방과 ‘현대아반시스’를 설립, 2억달러를 투자해 충북 오창에 100㎿ 규모 CIS(CIGS에서 갈륨을 나타내는 G가 빠진 것으로 CIGS 계열로 분류된다) 생산 공장을 짓기로 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업체와 기술제휴를 검토하고 일본 유명 태양전지 업체로부터 기술자를 영입하는 등 CIGS 연구개발(R&D)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삼성과 기술력 경쟁을 펼치고 있는 LG 역시 LG이노텍을 통해 R&D에 집중하고 있으며 이를 실증하기 위한 파일럿 라인을 경기 오산에 설치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최초 CIGS 양산의 영광은 중소기업인 대양금속에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 대양금속은 충남 예산에 25㎿급 CIGS 양산설비를 구축하고 있으며 이르면 7월부터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대양금속은 증설을 계속해 연말 50㎿로 공장을 늘릴 예정이다.
이밖에 SK와 GS칼텍스·동부그룹 등이 CIGS 박막전지 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정부도 박막 태양전지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올해부터 지원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1400억원의 R&D 자금을 투입해 a-Si와 CIGS·염료감응형 박막 태양전지 기술을 개발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고효율·대면적 기술개발에 초점을 맞춰 개발과 동시에 상용화가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
박막 태양전지 사업 투자가 늘고 있기는 하지만 시장 선점을 위해 과제도 많다. 우선 장비 개발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박막 태양전지 장비는 대부분 독일과 일본·미국·스위스 등에서 들여온 것이다.
그러나 ‘태양전지는 장비 놀음’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비는 태양전지 성능을 절대적으로 좌우한다. 지난해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가 박막 태양전지 장비 생산을 중단하자 중국 선텍파워홀딩스가 박막전지 생산공장 문을 닫은 것이 좋은 예다. 장비 업체가 기침을 하면 태양전지 업체는 감기에 걸린다는 말이 나돌 정도다.
인력 양성 역시 시급한 과제다. 국내에는 태양전지 관련 학과가 전무한 상황이며 대학원을 운영하는 곳도 손에 꼽을 정도다. 그나마 CIGS나 염료감응형 등 차세대 박막전지 인재를 양성하는 곳은 극히 드물다.
“1980년대 박막 태양전지를 전공한 연구원 한 명이 전부”라는 한 대기업 임원의 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CIGS의 경우 최근 국내 투자가 크게 늘면서 인력 기근이 심해지고 있다.
과감한 금융 지원은 필수다. 세계적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도 투자를 받지 못해 고사 위기에 처한 태양광 기업들이 국내에도 많이 있다.
“박막 태양전지의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금융기관이 투자를 꺼린다”는 한 박막전지 업체 사장의 말이 우리나라의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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