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여야, 대ㆍ중소기업 간 이해관계가 얽혀 표류하던 하도급거래 공정화법 개정안이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를 통과했다. 개정안은 11일 오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당초 가장 큰 논란이 일었던 납품단가 협의권은 2년간 유보하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법안에 담는 주고받기식 절충이 이뤄졌다.
개정안은 우선 중소기업협동조합에 하도급 대금 조정신청권만 부여하기로 했다. 한나라당 서민특위와 야당에서 요구해온 납품단가 조정협의권은 개정안 시행 후 2년간 경과를 지켜본 뒤 추가로 논의할 수 있다는 내용을 부대 의견으로 달았다.
그러나 대기업이 중소기업 기술을 유용했을 때 법적 배상 책임을 묻는 이른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결국 채택됐다. `기술 요구`와 `기술 유용`으로 세분해 각각 1배수와 3배수 손해배상제를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특히 기술자료 유용은 고의나 과실 입증 책임을 원사업자인 대기업에 묻고, 중소기업에 발생한 손해의 3배까지 배상하도록 규정했다.
하도급 대금 감액이 논란이 됐을 때도 입증 책임을 원사업자에게 묻도록 했다. 이와 함께 공정위가 하도급거래 서면 실태조사 결과를 공표하도록 의무화하고,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를 한국공정거래조정원에 추가 설치하도록 했다.
중재 역을 한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갑을 관계에서 탈피해 앞으로는 기술 개발을 하는 중소기업은 무한한 성장 가능성이 보장되는 제도장치를 해줬다는 의미가 있다"고 자평했다.
반면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그동안 징벌적 손배제도 도입에 반대해 오던 공정위가 하루아침에 태도를 180도 바꿔 황당할 뿐"이라며 "이 제도는 민법상 실손배상 원칙에 반하는 과도한 제재이며 빈번한 피소로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반발했다.
무려 23년간 표류했던 의료분쟁조정법도 이날 국회 법사위를 통과했다. 의료분쟁이 발생했을 때 소송이 아닌 조정으로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고 이를 전담하는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을 설립하는 것이 법안 핵심 내용이다.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의료 소송이 아닌 중재 방식으로 의료분쟁을 해결하는 길이 처음 열린 셈이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진행돼온 의료 소송은 평균 26개월가량이 소요돼 피해자들 고통이 컸다.
중재원은 의료 사고가 발생한 해당 의료기관에서 관련 문서를 열람ㆍ복사할 수 있고, 해당 의사는 서면이나 구두로 소명하게 된다. 다만 환자가 아닌 의사에게 사고 입증 책임을 물리는 조항은 논란 끝에 삭제됐다. 의사가 주의 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가항력으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서는 중재원이 보상할 수 있고, 피해자에 대한 신속한 배상을 위해 손해배상금 대불제도를 도입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용어설명>
◆기술 요구 손해 = 원사업자가 기술을 요구했을 때 중소기업이 응하지 않아 거래관계 단절이 발생했거나 요구에 응했으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아 발생하는 손해
◆기술 유용 손해 = 중소기업 기술을 허락 또는 대가 없이 원사업자가 사용하거나 제3자에게 넘겨서 중소기업에 발생하는 손해
[매일경제 김은표 기자/신헌철 기자/문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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