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펀드에 돈을 넣은 투자자들이 이번 대지진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일반인과 다를 수밖에 없다. 대지진에 따른 `경제 쓰나미`가 펀드 수익률을 향해 덮쳐 올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펀드평가사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1일 현재 국내에서 운용 중인 일본 펀드는 총 92개로 설정액은 5821억원이다. 중국 인도 러시아 등 주요 신흥국 펀드에는 못 미쳐도 단일 국가 펀드중에서는 그래도 중간급 규모는 된다.
이번 대지진이 미증유의 사태라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판단을 내리기가 쉽지는 않다. 대지진으로 일본이 입을 경제적 손실이 GDP 대비 1~3%를 넘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등 경제적 여파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선 재난극복 과정에서의 건설경기 회복 등을 전망하기도 하지만 일본 재정적자 상황을 감안하면 이것 또한 썩 여의치 않을 것 같다는 분석이다.
그런 점에서 일본 펀드 대거 환매 사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본 증시는 오랜 기간 조정을 받아왔기 때문에 투자자 상당수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에 들어온 사람들이다. 일본 펀드 3년 수익률은 -30.35%로 3년 이상 장기투자자는 지금 환매하면 대폭 손실을 감수해야만 한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증시 회복에 힘입어 2년 수익률은 25.99%로 상당히 양호한 편이다. 2년 이하 투자자라면 차익 실현과 동시에 일본 리스크 회피를 위한 환매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펀드 가입 후 90일이 지났다면 환매 수수료는 따로 물지 않아도 된다.
이계웅 신한금융투자 펀드리서치팀장은 "원전 폭발까지 겹치면서 일본 사태가 쉽게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며 "일부 원금 손실을 감수하더라도 우리나라나 대만, 기타 안전자산 쪽으로 이동하는 환매 자금이 상당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반면 일본 경제 크기와 내공을 감안할 때 대지진은 일회성 악재에 해당한다는 분석도 있다.
신민규 한국투자증권 차장은 "반도체, 화학공장 등 일본 산업게 피해 정도가 정확히 추산된 뒤에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적어도 일본이라는 거대 경제시스템이 자연재해 한 번으로 망할 가능성은 없다"며 "급락 후 반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섣부른 매도는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국내 투자자에게 일본 펀드는 이번 사태 이전에도 고민을 많이 안겨준 펀드였다. 최근 3년 손실률 -30.35%는 러시아 펀드(-36.97%)를 빼면 외국 펀드 중 가장 저조한 것이다. 한때 일본 펀드 손실률은 50%를 넘었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 평균보다 장기화하고 있는 경기 침체가 일본 펀드의 부진을 불러왔다.
이번 대지진 사태는 일본 펀드가 긴 부진을 지나 이제 막 수익률 고공행진을 시작한 시점에서 발생한 것이어서 투자자들에게 더욱 큰 안타까움을 안겨주고 있다.
일본 증시는 지난해 9월 이후 `선진국 모멘텀`에 힘입어 본격적인 회복세를 보여왔다. 지난해 9월 1일 8796.45로 바닥을 찍은 닛케이지수는 지난달 17일 1만891.60까지 가파르게 상승했다. 증시 회복은 일본 펀드 수익률도 동시에 끌어올렸다. 연초 이후 수익률은 3.03%로 러시아ㆍ북미와 더불어 가장 양호한 흐름을 보였다.
[매일경제 노원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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