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방사능 유출`이라는 전례 없는 악재에 직면하면서 투자자들이 대응 전략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지난 15일 투자 심리가 극도로 위축하면서 2008년 금융위기를 방불케 하는 `투매`가 빚어진 것은 그만큼 공포감을 반영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투매 자제를 권고하며 진정에 나섰지만, 투자심리가 안정을 되찾기에는 상당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16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일본 대지진으로 국내 대기업의 `반사이익`을 점치기도 했던 분위기는 원자력발전소 악재가 불거지면서 회의론(懷疑論)으로 급선회했다.
1995년 고베 지진이 발생한 직후 코스피는 0.1% 소폭 내리고 나서 이튿날 1% 반등했다. 이후 한 달 새 3.6% 하락했지만, 이웃나라의 천재지변이 국내 증시에까지 강력한 힘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증권가는 이 같은 경험을 토대로 이번 충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봤지만, 원전 폭발이라는 돌발 변수가 떠오르면서 전망이 어긋난 상황이다.
문제는 후쿠시마(福島) 원전 폭발로 비롯된 `방사능 유출`이 경험해보지 못한 악재라는 점이다. 1979년 3월 미국의 스리마일섬 및 1985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의 원전 사고가 `악몽`으로 꼽히지만, 증시와는 무관했기 때문이다.
신영증권 김세중 이사는 "스리마일 사고가 원자력 에너지의 위험성을 부각시켰지만, 당시 다우지수는 이틀간 1~2%가량 하락하면서 증시 재료로 크게 인식되지 못했다. 체르노빌은 공산주의였던 옛 소련에서 벌어진 일이어서 분석할 자료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자칫 일본발(發) 악재가 증시의 중장기 조정을 초래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투자 심리를 결정짓는 핵심은 `학습효과` 여부다. 전례를 찾을 수 없는 대형 악재가 돌출하면 투자 심리가 공황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커진다.
지난해 11월 `연평포격`을 비롯해 북한의 거듭된 도발에도 증시가 무덤덤한 데에는 전면전(戰)으로 비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경험칙이 주효하게 작용했다. 이에 반해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딱히 비교할 경험이 없던 사안이었기에 투자 심리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했고 전문가들의 저가매수 전략은 되레 손실만을 키웠다.
현재로서는 `방사능`이라는 새 이슈가 전면에 등장한 만큼 사태 추이를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회의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기술적인 측면에서 저가 매수의 필요성이 제기되지만 이 역시 `대규모 여진이 일어나지 않고 원자력 사고가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단서를 단 것인 만큼 당분간 한발짝 물러서서 관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원자력은 증권업계가 분석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사안이다. 지수가 단기 급락했기에 저가 매수를 권하고 있지만, 이 역시 대규모 여진이 일어나지 않고 원자력 사고가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게 전제"라고 말했다.
유진투자증권 조병문 리서치센터장은 "원전 폭발 이후에 전개될 상황은 불확실하다. 그 불확실성 자체가 거대한 악재가 되는 것이다. 상황이 더 악화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사실로 확인하고 주식 매수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