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리원 부품소재]<2부>메모리-시스템반도체 두개의 날개로 날아야 진정한 반도체 강국이다 (1)프롤로그

 지난 2010년 반도체가 선박·자동차·휴대폰을 제치고 대한민국 전체 수출 1위에 올랐다. 그뿐 만 아니라 반도체는 수출 507억달러(전년 대비 63.4% 성장)를 달성해 단일 수출 품목으로 연수출 500억달러를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다. 선박 497억달러, 자동차 354억달러보다 많다.

 세계시장 점유율도 13.2%(추정)로 세계 3위다. 일반인들조차 반도체를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으로 생각할 정도다. 누가 뭐래도 한국은 반도체 강국이다.

 하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그렇게 낙관적이지는 않다. 미래 성장 가능성이나 산업연관효과 측면의 문제를 볼 때 그렇다.

 대한민국을 반도체 강국으로 이끈 원동력은 단연 메모리다. 시장 점유율 60%를 육박한 메모리는 2인자가 없을 만큼 굳건한 입지를 구축했다. 반면에 반도체 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시스템반도체 부문의 실적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2010년 점유율은 3%에 불과하다.

 반도체는 IT 산업, 아니 이제 전 산업에 걸쳐 없어서는 안 될 필수 부품이다. 그래서 반도체를 ‘산업의 쌀’이라고 부른다. 반도체 전체를 산업의 쌀이라고 한다면, 시스템반도체는 쌀 중의 쌀이라고 부른다. 그만큼 시스템반도체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현재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시스템반도체 중요성은 더욱 강조될 것으로 보인다. IC인사이트가 지난해 내놓은 자료를 분석해보면, 2014년 시스템반도체 시장은 2406억4000만달러 규모를 형성할 전망이다. 메모리는 907억8500만달러 규모다. 전체 반도체 시장의 메모리 비중이 현재보다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고 해도 24%에서 27%로 크게 달라지지 않은 수준이다. 또 다른 시장조사기관 아이써플라이는 올해 시스템반도체 시장이 5.2% 증가한 2476억달러를 달성할 것으로 바라봤다.

 주위를 둘러봐도 시스템반도체의 중요성이 얼마나 커지는지 알 수 있다.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 수는 점점 늘어나 자동차용 반도체 시장이 급증하는 추세다. 이제는 자동차도 전자기기 중 하나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자동차와 같은 기계 산업이 새로운 시스템반도체의 수요처로 급부상했다. 스마트폰에 이은 스마트패드 인기로 인해 갑작스럽게 이 분야 시스템반도체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그뿐이겠는가. 형광등을 LED가 대신하면 그만큼 반도체(구동칩) 수요가 새로 창출된다. 변화의 시대에 새로운 시스템반도체 수요는 계속 창출된다. 이러한 때에 시스템반도체를 포기하고 반도체 강국을 꿈꾼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메모리-시스템반도체 두 개의 날개로 날아야 진정한 반도체 강국이 될 수 있다.

 한국 부품소재 산업의 나아갈 바를 조망하는 연중기획 ‘온리원(Only One) 부품소재’ 2부에서 아직은 열악한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분석하는 것은 이 같은 의도에서다.

 ◇성장 한계 다다른 메모리, 존재감없는 시스템반도체=세계시장 3%라는 시스템반도체의 취약한 성적표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세계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13.2%로, 3위다. 그만큼 1위를 달리는 메모리의 입지가 굳은 것이다. 메모리 분야는 공격적인 투자를 통해 한국이 세계시장 50%를 넘어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 반도체 산업은 위기라는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이른바 잘나간다고 하는 메모리 산업을 들여다보자. 메모리 집적 기술은 거의 한계에 달했고 메모리 미세화에 따라 인력 의존도보다는 장비 의존도가 높아졌다. 메모리를 만들어 내는 반도체 장비는 해외 의존도가 커 고용유발효과나 연관효과가 크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2010년 반도체 설비투자가 12조원이었는데, 이 중 장비 수입은 9조3000억원에 달했다.

 더욱이 메모리는 이미 50%를 초과한 마당에 세계 시장 점유율도 더 이상 늘리는 게 쉽지 않다. 메모리 전체 시장 규모도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올해에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반도체 단가하락 등으로 3.4% 감소한 664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말할 것도 없다. 점유율은 순위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다. 그나마 최근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 사업을 공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커가고 있는 정도다.

 이대로 가면 반도체 강국의 영예로운 이름표는 대만에 이어 중국에도 넘겨줘야 할지도 모른다.

 경종민 KAIST 교수는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겪고 있는 인력문제를 비롯한 여러 문제는 곧 전자산업의 위기를 말한다”며 “시스템반도체를 구성하는 시스템-인력-반도체(공정) 3요소가 모두 취약해 반도체 산업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시스템반도체 현주소=시스템반도체 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주장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 같은 주장은 시간을 거슬러 1996년부터 제기됐다. 당시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에 대한 목소리는 공허한 외침이 아니었다. 산관학연이 모두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에 관심을 보이면서 실제 움직임을 보였다. 그 즈음 삼성전자·현대전자·LG전자 등 대기업은 이에 발맞춰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다. 천문학적인 규모의 투자가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형성됐다. 당시 CPU를 국산화하기 위한 움직임도 있었고, 실제로 시제품이 나오기도 했다.

 IMF라는 거대한 암초를 만나 이 같은 움직임은 한풀 꺾였다. 당장 사업 유지하기도 힘든 터에 신규 사업 투자는 먼 나라 말이 되어버렸고, 급기야는 정부 주도의 대기업 간 빅딜까지 일어났다. IMF로 인해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큰 좌절을 겪었지만, 한편에서는 새로운 씨앗을 낳는 계기가 됐다. IMF를 전후로 대기업 반도체 회사를 떠났던, 그리고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태동을 이끌었던 이들이 하나 둘 창업을 한 것이다. 이것이 기반이 돼 현재의 팹리스(공장없이 설계만 하는 반도체 회사) 산업을 형성했다.

 이렇게 탄생한 팹리스는 지난 10여년간 성장과 실패를 반복하면서 업력을 쌓아갔다. 비록 성장통을 겪으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두지는 못했지만 새로운 도약의 자양분이 될 성공과 실패라는 교훈을 얻었다.

 지식경제부에 따르면, 현재 한국 120여개 팹리스 매출은 퀄컴의 20%에 불과한 15억달러 수준이다. 그 기간 동안 매출 2000억원을 넘어선 팹리스 기업은 실리콘웍스 단 한 곳에 불과하다. 세계 팹리스 순위 10는커녕 삼성전자조차 종합반도체회사(IDM) 중 시스템반도체 매출 13위에 머물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스템반도체 업계는 업계 협력과 새로운 전략을 통해 다시 한번 성공을 꿈꿔볼 만하다고 입을 모은다.

 ◇씨앗은 있다=팹리스는 물론이고 시스템반도체 업계가 그동안 기대에 못미쳤던 것도 사실이며, 시행착오를 거쳤던 것도 사실이다. 그 사이 대만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성장하면서 퀄컴·브로드컴의 뒤를 잇는 미디어텍이라는 대형 팹리스 회사를 키워냈다. 중국도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대대적으로 육성하면서 무서운 속도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그렇다고 한국의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포기하기엔 이르다. 다행스러운 것은 새로운 변혁기가 도래했다는 점이다. 이른바 스마트폰, 스마트 TV 등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혁신기기가 탄생하면서 새로운 기회가 열리고 있다. ‘윈텔(인텔과 MS의 연합전선)’의 위세는 현격이 약화됐으며 ‘GARM(구글+ARM)’이 급부상하는 등 20년간 이어진 전자업계 판도가 바뀌고 있다. 이러한 혁신기에는 먼저 더 좋은 제품을 출시할 수 있는 시스템IC 기술을 확보하자 못한 세트 기업들은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노키아, HP, 델 등이 스마트 기기에서 부진을 보이는 것도 그 요인 때문이다. 반도체 업계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공정기술과 다양한 IP를 확보한 삼성전자가 급부상한 것이 그 예다. 인텔은 PC 맹주에 한 치 앞도 못 나가고 있고 퀄컴 역시 프로세서 기능이 별도로 분리되면서 고전을 겪고 있다. 국내 시스템반도체 업체들도 이러한 기회를 살린다면 충분히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할 수 있는 셈이다.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사장은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어려움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활로가 없는 것은 아니다”며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하고 기술력을 키워간다면 답은 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디스플레이 1위 업체로 부상한 것은 브라운관시대에서 LCD로 넘어가는 변혁기를 잘 포착하고 적극적인 투자를 했기 때문으로 업계에서는 분석한다. 새로운 변혁기에 접어든 지금,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키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고 있다.

 

 표/반도체 시장 추이 (단위 억달러) 출처 아이써플라이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