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부터 브로드컴과 특허 분쟁을 벌였던 퀄컴은 2008년 특허 소송에서 20만페이지에 달하는 관련 이메일과 전자문서의 존재를 감췄다. 당시 법원은 퀄컴의 변호사들이 소송 증거 보존 실패 및 은닉 행위에 참여했다는 증거가 드러나자 퀄컴에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 결과 브로드컴의 변호사 비용까지 포함해 850만달러의 벌금을 선고했다. 퀄컴 변호사들 또한 변호사 윤리규정 위반으로 징계받았다.
지난 2006년 마이크로소프트(MS)는 Z4테크놀로지와의 특허 소송에서 이메일과 관련 데이터의 증거 개시 요청을 받았으나 제출하지 않았다. 미 법원은 MS 측에 패소 판결과 함께 250억원에 달하는 배상을 명령했다.
같은 해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연방법원은 램버스가 삼성전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삼성전자 측에 관련 서류를 모두 제출하도록 했다. 램버스는 재판 과정에서 삼성전자가 일부 중요 문건을 불성실하게 누락했다며 이는 연방민사소송규칙(FRCP)을 위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기업들 간의 법적 분쟁에서 전자문서와 이메일 등 디지털 증거 자료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우는 세 가지 사례다. 이들 사건의 공통된 결론은 디지털 증거 자료를 소홀히 준비했던 쪽이 모두 패소했다는 점이다.
미국은 지난 2006년 12월 개정 민사소송법(FRCP)을 통해 소송 당사자 양방이 재판 개시 전에 디지털 증거 자료를 제출하고, 그에 따라 판결을 내리는 ‘전자증거개시제(E-Discovery)’를 시행하고 있다. 전자증거개시제란 한마디로 증거 제출 범위를 이메일과 전자문서 등 디지털 자료까지 확대한 것이다. 이제 거의 대다수 업무가 이메일과 전자문서를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디지털 데이터는 필수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디지털 증거자료를 얼마나 충분히 준비하는지에 따라 법적 분쟁의 승패가 갈리는 시대가 됐다. 전자증거 개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모건스탠리는 6억달러, MS는 2000만달러, 퀄컴은 850만달러, 삼성전자는 로열티로 5년간 매년 9800만달러의 벌금을 각각 내야 하는 등 소송 사례는 널려 있다.
5년 가까이 지난 오늘날 우리나라 기업들은 전자증거개시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있을까. 현실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한국 대표 기업들인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만 해도 이메일 컴플라이언스 위반으로 국제 소송에서 거액의 배상금 지급 판결을 받은 바 있다. 향후 특허나 공정 경쟁 관련 소송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서 국내 기업들의 철저한 대비가 절실하다.
책은 전자증거개시제의 개념을 상세히 소개하고 다양한 현장의 사례를 담은 첫 신간이다. 전자증거개시제 관련 솔루션을 개발, 공급하고 있는 한국EMC의 전문가들이 그동안 쌓은 노하우와 경험을 책 한 권에 총정리했다. 전자증거개시제를 실무에서 응용할 수 있는 솔루션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어떻게 효율적으로 도입할지 등 여러 가지 방법론을 친절하게 수록했다.
우리 기업들이 앞으로 겪게 될 국제 분쟁에서 전자증거개시제를 적극 활용할 수 있는 길라잡이로서 손색없어 보인다.
한국EMC 지음. 전자신문사 펴냄. 2만원.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