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PPS 日원전 구하러 간다

지난 19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정부중앙청사에 한국과 일본 정부ㆍ재계 고위 관계자 4명이 급히 모였다. 임채민 국무총리실장, 미즈코시 히데아키 주한 일본대사관 공사, 민계식 현대중공업 회장, 이재성 현대중공업 사장이었다.

이들은 일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현대중공업이 보유한 이동식발전시스템(PPSㆍPackaged Power Station)을 긴급 투입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모임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이 김황식 국무총리에게 일본을 돕는 방법으로 PPS 긴급 지원을 건의한 데 따른 것이었다.

정 의원은 언론을 통해 미국 정부가 GE 가스터빈 발전기 `TM2500`을 보내기로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 바로 PPS 투입을 검토하라고 현대 중공업 수뇌부에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의원은 "미국 발전설비는 그 성능이 좋을지 모르나 일본까지 수송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한국이 나서는 게 최선"이라고 제안했다는 후문이다.

이날 회의에서 일본 정부는 현대중공업 PPS에 즉각 관심을 표명하며 화답했다.

이후 일본 도쿄전력과 현대중공업 책임자가 하루에 2회씩 콘퍼런스 콜을 통해 실무협의를 시작했다.

이들은 늦어도 이달 안에 PPS를 원전 현장과 재난 지역으로 보내기로 합의했다.

20일 외교통상부와 현대중공업 등에 따르면 정부와 현대중공업은 일본 후쿠시마 지역 원자로 냉각수 가동을 위한 전력 공급을 위해 PPS 4대와 기술진을 긴급 투입할 예정이다. 또 이 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전력난을 겪고 있는 인근 주민들을 위한 전력 공급 설비로 활용하기로 했다.

이번에 지원되는 PPS는 1대당 1.7㎿(메가와트)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4대를 가동하면 약 2만6000명에게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19일 오전 정몽준 의원이 김황식 총리에게 PPS 투입을 건의하면서 이날 곧바로 실무 협의가 이뤄지는 등 일사천리로 진행됐다"며 "미국 발전설비가 일본에 도착하는 데 열흘 넘게 걸리기 때문에 지리상 가까운 한국이 제공하는 게 낫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이번에 일본에 지원하는 PPS는 발전기 구동에 필요한 설비를 40피트급 컨테이너에 담아 손쉽게 전기를 생산할 수 있도록 한 패키지형 소규모 발전기다.

PPS는 국내 유일한 독자엔진인 `힘센엔진`을 주기관으로 하고 설치와 이동이 편리해 재해 지역에서 쓰임새가 높다. 경유뿐만 아니라 저렴한 중유를 연료로 사용할 수 있어 경제성도 뛰어난 것이 특징이다.

쿠바 화폐에는 PPS 그림이 새겨져 있을 정도로 그 인기가 높다. 쿠바 10페소 지폐에 `에너지 혁명`이라는 문구와 함께 PPS가 도안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2008년 허리케인이 쿠바를 덮쳐 발전소가 파괴되는 국가 재난 사태가 발생했을 때 PPS가 비상 전력을 공급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쿠바 정부는 지금까지 PPS 544기를 수입해 현재 쿠바 전체 전력 가운데 35%를 담당하게 하고 있다.

PPS는 지난해 1월 대지진을 겪었던 중남미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인근 카르푸 지역에서 전력을 공급해 초기 피해 복구에 한몫을 했다. 지난해 칠레 대지진 때도 제몫을 톡톡히 했다.

현대중공업이 독자 개발한 힘센엔진을 활용해 만든 이 설비는 지금까지 중남미, 중동, 동남아 등지에 1700여 대를 수출했다. 2006년에는 지식경제부가 선정하는 세계일류상품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PPS는 현재 아이티 포르토프랭스 외에도 북부 항구도시 카프아이시엥, 북서부 고나이베 등 아이티 주요 도시에 27㎿ 규모로 가동 중"이라며 "자연재해와 전력난이 심각한 중남미 지역에서 수주 문의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은 일본에 PPS를 공급하게 돼 비조선 분야 역량을 강화할 수 있게 됐다.

[매일경제 문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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