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서울 청파동 숙명여자대학교 내 한 강의실. 2학년 학생 두 명이 단상에 섰다. 20여명의 시선이 이들을 향했다. 단상의 학생들은 호흡을 한 번 가다듬고는 정면을 응시했다. 왼쪽에 선 학생이 먼저 운을 뗐다.
“저희는 ‘슈 에코(Shoeco)’라는 브랜드를 소개하겠습니다. 친환경적 신발의 개발과 판매로 소비자에게 건강한 삶과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10분가량 계속된 발표가 끝나기 무섭게 다른 참가자들의 질문 공세가 이어졌다.
“신발은 어떤 방식으로 늘어나나요?”
“제품 대상이 제한적인 것 같습니다. 한 신발을 1년 이상 신으려면 더 다양한 기술이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발표자들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살짝 당황하다가도 금세 마음을 추스르고 성실하게 답변했다. 강의실 한쪽에서는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이 오가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때때로 스마트폰에 메모를 남기기도 했다. 이준호 넷다이버 대표와 이판정 넷피아 사장도 흐뭇하게, 때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학생들의 토론 광경을 지켜봤다.
이는 숙명여자대학교(총장 한영실)의 앙트러프러너십(enterpreneurship) 전공에서 개설한 수업 중 하나다. 자신이 들고 나온 사업 아이디어를 다른 이들에게 소개하고 평가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특히 이날은 조 회장이 직접 멘토링에 나섰다. 조 회장은 현재 중소기업청, 벤처기업협회,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가 공동 주최하는 ‘YES리더 기업가정신 특강’의 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날 사업 아이템을 들고 나온 이들은 모두 세 팀. 친환경적 신발을 비롯해 여대생을 위한 상품 인증마크 사업과 스마트폰용 설문조사 애플리케이션 제작 사업 등을 소개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발표자는 모두 갓 입학한 1학년들이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한 지 채 2주도 지나지 않았지만, 선배 못지않은 열의를 보여줬다. 게다가 미림여자정보과학고등학교(교장 장병갑)에서 창업 동아리 활동을 하는 학생들도 자리를 함께해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 선배들을 긴장하게 했다.
조 회장은 발표가 끝난 뒤 학생들의 사업 아이템에 대해 일일이 조언했다. 그는 “대기업 총수를 만났을 때도 30초 안에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사업 아이템은 단순해야 한다”며 “발표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이런 기회를 자주 접하라”고 주문했다.
멘토링에 참여한 학생들은 선배 벤처기업가로부터 조언을 듣는 기회가 마련된 것에 감사했다. 국태화양(앙트러프러너십 전공 2)은 “멘토링과 특강처럼 값진 경험을 할 수 있어 기쁘고, 나의 미래도 더욱 뚜렷해지는 것 같다”며 “대학을 다니는 동안 꼭 한번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한인배 서울벤처인큐베이터 운영지원실장은 “YES리더 기업가정신 특강이 열리는 곳을 다녀보면 오늘처럼 행사 참여에서 커다란 자극을 받는 학생들을 많이 본다”며 “청소년과 대학생이 창업을 어려운 일로 단정짓지 않고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신감을 키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현정 비트컴퓨터 회장이 대학생에게 전하는 예비창업자의 덕목>
1. 욕심을 가져라.
창업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욕심이 있어야 한다. 나쁜 욕심이 아니라 긍정적인 욕심 말이다. ‘소셜 네트워크’라는 영화를 보면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여자 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욕심이 그를 사업 성공으로 이끌었다. ‘나는 이런 욕심 때문에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절실함이 필요하다. 절박한 욕심이 있어야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
2. 차별성을 갖춰라.
여러분은 융합 세대다. 한 가지만 해서는 부족하다. 한 학년 20명 중에서 항상 1등 하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된다. 내가 문과라면 다른 친구들이 문과에만 집중할 때 나는 이과까지 섭렵한다는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차별성이다. 의기소침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다른 내용에 대한 절실함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가라.
3. 아이템은 간단해야 한다.
프레젠테이션은 짧아야 한다. 30초보다 더 짧아도 좋다. 그러려면 사업 아이템이 간단해야 한다. 기업 총수와 엘리베이터에서 마주쳤다고 생각해봐라. 아주 짧은 시간에 자기 사업을 설명할 수 있다면 그건 되는 사업이다. 복잡하면 돈이 되지 않는다. 복잡해서 잘되는 것은 없다.
4. 경험을 많이 해라.
평소 많은 것을 경험해야 한다. 그래야 정교함이 산다. 전철을 타면 많은 사람이 오간다. 이들을 보면서 저들은 어떤 것에 몰두하는지 살펴봐라. 그 모든 행동이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다.
5. 끊임없이 습작해라.
명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습작품을 많이 그린다. 여러분도 많이 습작해라. 예비창업자에게 습작이란 사업 아이템이다. 사업 아이템을 꾸준히 내놓아라. 한 달에 하나씩, 1년에 열 두 개의 사업 아이템을 만든다고 생각해라.
6. 손수 만든 아이템을 기업에 팔아봐라.
3학년 올라가기 전에 적어도 내가 만든 무언가를 기업에 단돈 100만원이라도 받고 팔아봐라. 내가 회사를 차려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아이템은 밑천으로 남겨두고, 다른 것을 내놓는 것이 좋다. 작지만 성공해 본 경험이 여러분을 더욱 큰 사람으로 만들 것이다.
<박스/YES리더 기업가정신 특강>
‘성공한 벤처 기업인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창업을 위해 필요한 열정, 몇 차례 찾아온 고비, 그리고 마침내 다가온 성공의 쾌감까지 그 특별한 ‘무엇’을 전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가 바로 ‘YES리더 기업가정신 특강(이하 특강)’이다. 특강은 지난 2009년 중소기업청과 벤처기업협회,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의 공동 주최로 시작됐다. 특강은 선배 벤처 기업인의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듣는 자리로 예비 창업자에게 많은 호응을 얻었다. 이뿐 아니다. 특강은 학교와 사회 곳곳에 기업가정신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고, 다시 찾아온 제2의 벤처 붐과 형성에 이바지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올해로 3년째를 맞는 특강은 이 같은 성과를 기반 삼아 사업을 더욱 확대할 계획이다. 특강 운영을 맡은 서울벤처인큐베이터는 △특강 규모 확대 △온라인 서비스 구축 △체험활동 강화 등을 올해 주요 추진 방향으로 꼽았다.
우선 특강 규모가 총 800회로 확대된다. 지난해 11개 지역별로 295차례 진행된 특강이 올해 430회로 늘어나며, 비즈쿨·창업강좌 등을 활용한 강좌도 340회 열린다. 또, 국립마이스터고 등 중소기업 맞춤형 인력양성 프로그램 참여 학생 대상 강의도 30회 진행된다. 지난해 64회 진행된 멘토링도 100회로 늘어난다. 주최 측은 11만여명의 대학생과 청년 예비창업자가 특강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했다.
온라인을 통한 기업가정신 확산에도 힘이 실린다. 주최 측은 오는 4월까지 동영상 강의 전용 홈페이지 구축을 마치고, 5월 강의를 시작한다. 스마트폰·스마트패드 전용 기업가정신 동영상 강의 애플리케이션도 개발해 언제 어디서나 다양한 기기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할 방침이다. 블로그·트위터 등을 활용해 강사진(YES리더)과 수강생 간 정보 교류도 돕는다.
기업가정신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활동 기회도 강화한다. 오는 7월과 9월 ‘사업아이템 경진대회’를 열어 창업에 대한 도전의식을 고취하며, 우수 수상자에게는 미국 밥슨대 단기 연수 기회도 제공한다. 주최 측은 미국 스탠퍼드대의 ‘5달러 프로젝트’처럼 기업가정신을 체험할 수 있는 과정도 발굴해 특강의 질적 향상에도 힘쓸 계획이다.
<박스/숙명여대 앙트러프러너십 전공>
‘미국에 스탠퍼드대와 밥슨대가 있다면 한국에는 숙명여대가 있다.’
전 세계에 기업가정신 교육·연구의 요람으로 알려진 스탠퍼드대와 밥슨대처럼 숙명여자대학교(총장 한영실) 역시 기업가정신 확산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숙명여대는 국내 최초로 글로벌서비스학부를 개설, 지난해 처음으로 신입생을 선발했다. 그 중 앙트러프러너십 전공은 철저하게 기업가정신 함양에 초점을 맞췄다. 창업·사회적 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펼치는 인재로 성장하려면 ‘창의적 사고와 도전·개척 정신’이라는 기업가정신 체득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개설 취지는 교육과정 전반에 녹아 있다. 숙명여대는 스탠퍼드대와 자매결연을 통해 기업가 정신 함양에 필요한 다양한 커리큘럼을 도입했다. 실험적이면서도 현장 중심인 교과 과정은 앙트러프러너십 전공만의 특징이다. 학생들은 스탠퍼드대에 파견돼 ‘글로벌 앙트러프러너십 프로그램’을 이수할 기회와 창업 및 세계적 기업 취업을 위한 멘토링 프로그램을 받는다. 선진국의 우수사례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탐방 기회도 여러 차례 마련된다.
‘YES리더 기업가정신 특강’처럼 선배 벤처기업인의 강연을 듣는 기회가 교과 과정의 하나로 운영된다는 점 또한 매력이다. 학생들은 직접 짠 사업 아이템을 선배 벤처기업인에게 선보이고 멘토링을 받을 수 있다. 지난해에도 안철수 KAIST 석좌교수,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등이 숙명여대를 찾아 학생들에게 올바른 기업가정신 함양의 중요성을 알렸다.
숙명여대는 전공 외에도 앙트러프러너십센터를 열어 창업 연구 지원에 나서고 있다. 센터는 사회적 가치를 기반으로 한 기업가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 연구와 ‘시니어 창업스쿨’ ‘창업경진대회’ 등의 교육 사업도 운영 중이다.
손종서 앙트러프러너십센터 교수는 “졸업생들이 창업뿐만 아니라 다국적기업의 신사업 기획부서, 세계 경제단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질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본 교양과 실무 능력을 가르치는 것이 앙트러프러너십 전공 개설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박창규기자 kyu@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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