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전기주파수 분리가 일본 전력난 키웠다

[ET단상] 전기주파수 분리가 일본 전력난 키웠다

 일본 지진 소식을 듣고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KTR)도 일본돕기에 동참키로 했다. KTR과 협력하고 있는 일본 기업 및 기관들에게 조속한 도움을 위해 구호단체 등을 통하지 않고 직접 돕기로 했다.

 일본 협력기관들에게 전화를 걸어 현지에서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대답은 생각 밖이었다. 양초와 손전등 같은 정전시 필수품이 가장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제한송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정전 관련 물품이 이렇게 절박하고 절실할지는 몰랐다.

 일본의 제한송전이 생각보다 큰 문제를 낳고 있다. 도쿄와 주변 7개현의 4200만명에게 전력을 공급하고 있는 도쿄전력은 지진이후 발전능력의 절반도 되지 않는 3100만㎾밖에 생산하지 못한다고 한다.

 사실 일본 전체의 전력생산량을 보면 일본이 그렇게까지 전기가 부족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지진피해가 없는 서부 일본의 전력회사들은 전기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같은 일본 서부지역의 전기를 도쿄 등 일본 동쪽지방에 송전해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왜 서쪽지역 전력회사의 전기를 동쪽으로 끌어 쓸 수 없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전기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이다. 일본은 혼슈 중심의 후지(富士)강을 기준으로 서부지역은 60㎐이고, 동부지방은 50㎐이다. 간단한 주파수 표준화가 안 돼 있어 일본전체의 전력생산량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게 된 것이고, 그 결과 제한송전의 범위가 넓고 정전시간이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도쿄전등 아사쿠사 발전소가 1895년 도입한 독일 AEG의 발전기가 50㎐였기에 동부일본은 50㎐를, 1897년 오사카전등이 미국 GE 발전기를 도입하면서 서일본 지역은 60㎐를 표준으로 삼게 됐다. 이후 일본은 100년 이상 여러 차례에 걸쳐 주파수 통일을 위해 노력했으나 실패했다.

 이번 지진으로 더욱 불거졌지만 사실 일본은 지금까지 주파수 문제로 적지 않은 경제적 손실을 입어 왔다. 생산자는 겸용제품을 만들어야 해 그만큼 높은 원가가 소요됐고, 소비자도 이사 등 생활에서의 불편을 감수해야 했다.

 일본이 초창기에 전기 주파수를 표준화했다면 이번 지진으로 인한 정전 범위와 피해도 크게 줄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폐허 속에서 고통 받는 지진피해자들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두려움과 추위에 떠는 것만큼은 줄일 수 있지 않았을까.

 우리가 무심코 지나치고 있지만, ‘표준’은 이렇듯 매우 중요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다. 표준은 작은 것처럼 여기기 쉽지만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식경제부 기술표준원은 생활 속 표준화 사업을 벌이고 있다. 우리도 이번 일본 지진을 반면교사로 삼아 주변에서 표준화되지 않아 장래 큰 비용과 불편을 초래할 수 있는 것들은 없는지 더욱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최근 다시 논의된 ‘휴대폰 한글자판 표준화’가 마무리 단계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글자판 표준화가 늦어질 경우 일본의 전기주파수 표준화와 유사한 상황이 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해당사자들의 적극적 참여와 미래를 위한 합의는 빠를수록 좋다.

 표준화되지 않아 불편한 점을 알았을 때 바로 고치는 것이 당장은 비용도 들고 귀찮을 수 있지만, 보다 큰 안목으로 봤을 때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조기성 한국화학융합시험연구원장 kscho@kt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