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거래소 독점체제 깨면 삼성전자 싸게 살길 열린다

`뉴욕증권거래소(NYSE) 애플 매수 호가는 292달러, ATS Ⅰ에선 291달러, B-ATS Ⅱ에선 290달러.`

상식적인 투자자라면 당연히 좀 더 싼 ATS Ⅱ에 가서 애플 주식을 살 것이다.

미국 투자자들은 이처럼 한 종목의 매수ㆍ매도 호가를 거래소별로 비교할 수 있다. 비교를 통해 가장 싼값에 애플 주식을 사고 가장 비싼 값에 팔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에는 NYSE 말고도 상장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소위 ATS(대안거래 시스템)가 다양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하다. 미국 유럽은 물론이고 심지어 우리나라와 주식시장 구조가 비슷한 일본도 이런 ATS가 활성화돼 있다.

하지만 한국은 한국거래소가 모든 상장사 주식 거래를 독점하고 있어 싫든 좋든 이곳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이 누려야 할 혜택도 상당 부분 희생되고 있다는 불만 목소리가 높다. 독점 폐해가 심각하다는 업계 지적에 따라 금융위원회와 자본시장법 개편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거래소 경쟁체제 도입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 증권시장 전문가는 21일 "경쟁체제로 가면 투자자에게 돌아갈 혜택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독점체제를 등에 업고 이익만 쌓아놓는 데 급급했던 한국거래소의 안일한 태도에도 적지 않은 자극제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현재 거론되는 경쟁체제 도입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제2 거래소 설립이고, 둘째는 주식거래 기능만 담당하는 ATS 활성화다. 일단 금융당국은 제2 거래소보다 ATS 활성화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한국거래소의 3대 기능(상장, 규제, 주식거래) 중 주식거래 부문만 전담하는 게 바로 ATS다. ATS는 `ECN`과 `DARK POOL`로 나뉜다. ECN은 장중 모든 투자자가 자유롭게 상장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공간이다. DARK POOL은 정보 누출에 민감한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한다.

국내에서 과거에도 한 업체가 ECN을 도입했으나 정규매매 시간 외(오후 3시 이후)에만 거래가 가능하고, 호가도 극히 제한돼 결국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금융위는 이 같은 ECN 규제를 과감히 풀어 실질적으로 한국거래소와 경쟁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ATS가 활성화하면 한국거래소를 포함한 각각의 거래 공간 비교가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특정 시점에서 삼성전자 매수 호가가 한국거래소에서는 89만원이고 다른 ATS에선 88만5000원이라면 투자자들은 한국거래소가 아닌 ATS에서 삼성전자 주식을 사려고 할 것이다.

게다가 ATS별로 투자자들을 위한 차별적 서비스를 내세울 수 있고, 한국거래소와 ATS 간 수수료 경쟁도 촉발할 수 있어 투자자에겐 이익이다.

한 시장 전문가는 "ATS가 활성화되면 이를 토대로 일부 ATS가 상장ㆍ규제 기능을 갖춘 제2 거래소 설립을 추진할 수도 있다"며 "이 경우 자연스럽게 합종연횡을 통한 대형화 가능성이 좀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남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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