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사회의 접점을 찾아서
송성수 지음. 한울아카데미 펴냄.
한국 사회가 개발 경제에 돌입했을 즈음인 지난 1963년 우리나라 인구 1만명당 연구인력의 수는 한 명도 채 안 됐다. 당시 한국의 연구개발 투자는 고작 12억원, 국내총생산(GDP) 대비 그 비중은 0.25%에 그쳤다.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거듭하던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기준 인구 1만명당 연구인력의 수가 33.8명으로 크게 늘었다. 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 비율도 2.68%로 급증했다. 적어도 외형상 수치만 보면 경제 규모만큼 국가 연구개발 역량도 향상됐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부정할 수 없는 단면은 이공계 기피 현상이다. 이공계 위기의 원인에 대해선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처우가 대부분 도마에 오른다. 그러나 이 또한 단견적인 시각이다. 과학기술자를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가정하는 경향이 강한 탓이다. 반면에 과학기술자가 수행해야 할 사회적 역할과 바람직한 상에 대해서는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결국 과학자들 스스로가 사회로부터 고립을 자초하지는 않았는지, 과학자들은 사회 문제 해결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무엇을 위해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지 등에 대한 보다 진일보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유명한 역사가 에릭 J 홉스봄은 지난 20세기를 ‘극단의 시대’로 규정하면서 과학이 지닌 패러독스를 적절히 짚어냈다. 역사를 통틀어 20세기만큼 과학에 지배당하거나 의존한 적도 없었고, 과학에 대해 심기가 불편했던 시기도 없었다. 21세기 들어서는 이런 경향이 더욱 짙어지고 있는 것이 명약관화한 사실이다. 과학이 인간의 삶에 더욱 깊고 넓은 영향을 주면서 관련된 사회 문제도 시간이 흐를수록 뚜렷하게 표면화되는 추세다.
저자는 “STS는 21세기 필수 교양”이라고 그 중요성을 설파한다. STS란 ‘Science, Technology and Society(과학기술과 사회)’, 혹은 ‘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과학기술학)’를 의미하는 머리글자들이다. 책을 관통하는 포괄적인 주제이자 과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강조하는 말이기도 하다.
과학기술은 인류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풍요롭게 만든 것은 물론이고 나아가 사회 진보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전쟁 무기화, 환경오염, 안전사고, 윤리 문제 등 지구촌 전역에 심각한 폐해를 주기도 했다. 최근 세계적인 이슈로 터진 일본 원전 사고나 여전히 논란에 휩싸여 있는 유전자 복제 기술 등을 굳이 거론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책은 과학기술에 대한 인문학·사회과학적 접근을 통해 과학기술학의 주요 주제들을 다룬다. 다소 생소하지만 과학기술사, 과학기술문화, 과학기술윤리, 과학기술 정책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며 한국 사회의 현실 속에서 과학기술의 의미와 발전 방향을 새롭게 정의한다.
결국 저자가 강조하는 핵심은 과학기술이 인간과 사회의 진보를 보장할 것인지, 아니면 인간이 오히려 그 노예로 전락할 것인지의 갈림길에서 그 딜레마를 극복해보자는 것이다. 새로운 시각으로 과학기술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깊이 있게 통찰할 수 있을 때 가능한 일이다.
2만7000원.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