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업계가 조선과 IT의 융합에 적극 나선 것은 중국의 강력한 추격을 따돌리고, 지속적인 이니셔티브를 장악하기 위해서다. 기존 선박 제조기술에 세계 최강인 IT를 접목, 부가가치 높은 선박을 만들겠다는 게 목표다.
지난 2000년대 후반까지 선박건조 세계 1위를 달리던 우리나라는 중국이라는 추격자를 만났다. 중국은 과감한 투자와 저렴한 노동력을 앞세워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듯이 우리 조선업을 위협했다. 국내 IT산업도 단순 IT산업만의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이 늘어났다.
정부는 조선분야 IT 융합의 첫 연구개발(R&D) 과제로 SAN(Ship Area Network)을 선정, 지난 2008년부터 3년간 연인원 133명, 총 270억원(정부 135억원, 현대중공업 135억원)을 투입해왔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선박건조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중국 등 후발국 추격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조선IT로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취지에서다.
선박통신 기술 이외에 조선소 작업장의 생산성 향상 및 작업환경 개선을 위한 와이브로(WiBro) 등 무선통신과 전자태그(RFID)를 이용하는 ‘디지털 조선 야드 기술’도 이미 현대중공업에 시범 적용 중이다. 이번 SAN 기술을 활용한 스마트 선박기술을 개발해 선박 자체를 디지털화하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정부와 ETRI는 선박 안전운항 솔루션과 연·근해 무선통신망 고도화, 선박용 e내비게이션 표준기술 개발 등도 추진할 계획이다.
<>함호상 ETRI 융합기술연구부문소장 인터뷰
“타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현대중공업과 조선과 IT융합의 연구개발(R&D)과제 ‘SAN을 활용한 스마트 선박기술’ 개발을 주도했던 함호상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융합기술연구부문소장은 융합IT 성공의 전제로 ‘오픈 마인드’를 강조했다.
그는 “조선IT 연구를 시작할 당시 전통산업 종사자와 IT 종사자 간 심리적 거리가 있었다”며 “제품 안정성을 최우선시하는 전통 조산업계와 신기술의 빠른 적용에 민감해 하는 IT업계 간 상이한 업무 스타일 차이를 극복하는 데 많은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연구과제를 추진하면서 타 업계에 대한 지식과 이해 부족에다 주사업자 위치가 울산(현대중공업)과 대전(ETRI)이라는 물리적 거리감까지 더해지며 초기 의사소통과 과제 참여자들의 협력이 쉽지 않았다는 것.
이를 극복하기 위해 ETRI와 현대중공업, 울산대, 울산시는 별도 협약을 맺고 상호 정보공개를 약속했다. 신뢰를 쌓기 위한 과제 참여자 통합 워크숍도 분기별로 개최하고 초기 6개월간의 밀착토론을 통해 긴밀한 협력체제를 구축했다.
함 소장은 “조선IT 융합에 대한 정부 의지에다 ETRI와 현대중공업 경영진의 신뢰가 쌓이면서 좋은 역할분담이 이뤄졌고, 이번 사업화 성과물로까지 이어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SAN 개발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은 현장요구사항과 조선업계 요구와 기존 모델 등을 제공했다. ETRI는 새로운 기술을 제시하고 선박에 특화된 융합 기술개발에 주력했다. 울산대와 울산시도 기술개발과 인프라 제공 등에서 힘을 보탰다.
그는 “단순한 기술 간 결합은 산업 효율성을 향상시키지만, IT산업과 전통산업의 융합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라며 “이번 기술은 우리나라의 선박건조 경쟁력에다 고신뢰성 통신기술을 결합해 고부가가치 미래형 선박을 만들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앞으로도 수많은 IT융합 성과물이 나타날 수 있고 더 많은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는 게 함 소장의 생각이다.
“오픈마인드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찾기 위한 노력을 확대하고 서로 윈윈할 포인트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며 “IT융합은 정체된 국가경제 성장의 한계의 뛰어넘을 수 있는 새로운 흐름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