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대기업 총수들이 동반성장을 이슈로 소모적 논쟁을 벌이고 있다. 상생문제의 해결을 위해 대기업에서 결정적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의 상생의지의 문제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인체질환의 치료도 환부를 정확히 진단하는데서 출발한다. 상생의 근원적 문제는 비상생이 초래될 수밖에 없도록 구조된 대기업의 인사평가시스템이 가장 큰 문제다. 이 문제만 해결해주면 동반성장은 물론이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모두에게 엄청난 원가절감을 가져다 줄것이다. 상생의 근원과 해법은 사실상 매우 간단하다.
기업이든 정부부처든 모든 업무는 실무자들이 수행한다. 그리고 그들을 움직이는 사실상의 절대권력은 ‘인사평가시스템’이다. 대기업의 관리구조속에는 아직도 1900년대식 인사평가 방식이 있으며, 다음의 세가지 치명적 유형들이 비상생을 창출하고있다.
첫째는 가격지상주의적 구매관리다. 상생갈등의 90%는 구매·납품이라는 구조속에 있다. 예컨대 요즈음 대기업들마다 원가절감에 혈안이 되어 난리다. A사의 금년도 원가절감목표가 500억원이라고 치자. 그 숫자는 각부서 또는 개인으로 할당되어 내려간다. 그 결과치는 곧바로 각부서나 개인의 인사고과로 이어진다.
대기업에는 대개 구매, 자재, 생산, 기술, 품질 등의 실무부서가 있다. 구매부서에서 50억원 가량의 원가절감목표를 할당받았다고 하자. 그들의 선택이 무엇일지는 너무나 자명하다. 기존 공급사를 쥐어짜던 공급원을 바꾸던 좀더 싼것을 찾는 것이다. 그들은 저렴하게 구입하는 것으로 평가받는 조직이다. 따라서 그들은 가격인하에 필사적으로 매달릴수 밖에 없다. 가격지상주의적 구매관리가 가치지상주의적 구매관리로 바꾸면 대한민국 상생문제의 90%는 즉시 해결된다. 갈등이라는것은 상호간 가치평가가 다르기때문에 발생된다. 가치데로만 인정해주면 된다. 가치가 안되는 것을 요구한다는 것은 상생이 아니다.
가격지상주의적 구매관리가 기업의 건전성을 해치며, 가치구매가 정답임을 모르는 대기업 경영자는 없다. 그러나 여전히 가격지상주의적 구매관행은 고쳐지지 못하고 지속되고 있으며, 가치구매(價値購買)가 설자리를 잃고있다.
배타적 부서관리도 큰 문제다. 대기업의 각개전투식 부서관리는 가치평가를 가로막고 있다. 우리 기초산업부품은 아직도 품질과 조달조건에서 중국산보다 우수하며 이런 각각의 산업적가치가 종합적으로 평가되어 보상되는 것이 가치구매다. 그러나 품질은 품질부서의 관심사이고 조달조건은 자재부서의 관심사이며 횡적조율은 없다보니 가치구매가 정착되지 못한다. 결국 원가절감이라는 명분속에 가격의 벽을 넘지못하고 만다. 중국산들이 가격표준이 되어가면서 국산산업부품들이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절대적 이유다.
셋째 경직된 예산 시스템의 문제다. 한번 정해진 구매비용예산의 하향조정은 절대적 금기사항이다. 원자재가격이 올라도 납품가인상이 따라주지 못하는 이유를 여기서 찾으면 된다. 앞서 지적한 세가지의 치명적 병폐들이 통합적으로 어우러져 비상생을 만들고, 국산산업부품을 길거리로 내몰고 있으며, 급기야는 대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킨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본원전의 폭발만이 아니다. 우리산업에 아랫도리없는 윗도리들만 덩그러니 남는 다는것이다. 다시한번 강조한다. 동반성장은 대기업들의 가치구매로 해결되며, 인사평가시스템이 그 툴이다. 요즈음 대기업에서 상생의 인사평가반영 얘기가 들려온다. 옳은 얘기다. 정확한 방향이기를 바라며, 무엇보다 실천적 행동이 중요하다.
김덕한 한국화스너 대표 dhkim@kf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