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작년 9월 총부채상환비율(DTI) 완화 후 7개월간 주택담보대출에 치중한 반면 중소기업 대출과 무담보 개인신용대출에는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
돈이 필요한 중소기업과 서민층에 제때 자금이 공급될 수 있도록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 회복을 위한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주택.대기업대출 증갉중기.신용대출 감소
28일 은행권에 따르면 국민, 신한, 우리, 하나, 기업은행 등 5개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은 24일 현재 201조1천926억원으로 전월말보다 1조2천321억원 증가하면서 200조원을 돌파했다.
DTI 규제가 완화된 작년 9월 이후로는 거의 7개월간 8조5천779억원 늘었다. 이는 2009년 9월부터 작년 3월까지 7개월간 증가액 2조4천245억원의 3.5배 수준이다.
반면 개인신용대출은 24일 현재 62조1천783억원으로 작년 8월말보다 4조7천979억원 급감했다. 2009년 9월 이후 7개월간 2조1천601억원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2.2배 수준이다. 2008년말 71조3천530억원에 비해서는 거의 2년3개월 새 9조1천747억원 축소됐다.
작년 9월 이후 DTI 완화 기간에 대출을 받으려는 수요가 늘어나자 은행들이 주택담보대출에 치중하면서 담보가 없는 신용대출을 외면한 것으로 보인다.
중기대출도 작년 9월 이후 5천271억원 감소했다. 2009년 9월 이후 7개월간 2조3천894억원 증가한 것과 대조적이다.
2009년 9월 이후 7개월 동안 1조9천966억원 줄었던 대기업대출은 작년 9월 이후로는 5조652억원 늘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위기 이후 은행들이 자금 사정이 불안정한 중소기업에 대한 여신 관리를 강화하는 대신 안정적인 대기업 여신에 치우쳤다"며 "DTI 완화 이후에는 원금 회수 가능성이 큰 주택담보대출 유치에 더욱 치중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은행 자금중개 기능 회복 시급
은행의 자금중개 기능이 약화되면서 중소기업과 서민층의 자금난이 가중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자금 사정 등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을 보여주는 현재생활형편 소비자동향지수(CSI)와 6개월 후의 생활형편전망 CSI는 3월에 일제히 하락하면서 각각 23개월과 24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한 금융연구기관 연구원은 "담보물 확보에 치중해 정작 돈이 필요한 중소기업이나 저소득층에 자금이 형평성 있게 배분되지 못하는 것은 우리나라 은행의 고질적인 병폐"라며 "최근 은행권의 경영진 선임이 마무리되면서 앞으로 영업경쟁이 치열해져 이러한 현상은 한층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등에게 돈이 흘러갈 수 있도록 제도적 보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본부장은 "진정한 의미의 자금중개 기능이 작동하려면 금융회사들이 기술력 평가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며 "유망 기업을 찾아내 투자하는 기술펀드를 조성한 뒤 고객 자금을 끌어들여 투자하고 투자 이익을 고객에게 돌려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 본부장은 "이러한 제도가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초기에 보증 확대 등 정책적인 지원을 통해 일부 위험을 부담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