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은행들이 대대적인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가장 먼저 외연 확장이 눈에 띈다. 지난달 부산은행이 지방은행 최초로 금융지주사(BS금융지주)를 설립하고 다음 달에는 대구은행의 금융지주사 설립이 예상된다. 금융지주사 전환을 계기로 두 은행 모두 경쟁적으로 몸집 불리기와 사업 다각화를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대규모 IT투자도 잇따르고 있다. 경남은행과 전북은행은 올해 기존 시스템을 재정비하고 이르면 내년부터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착수할 계획이다. 현재 차세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대구은행과 부산은행은 각각 오는 5월, 내년 초에 차세대시스템을 오픈할 예정이다. 광주은행과 제주은행도 시스템 고도화를 통해 상품과 서비스, 마케팅 영역에서 지역에 특화된 차별화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지난해부터는 영업권역 확대도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달 광주은행이 서울 마포금융센터지점을 개설해 서울에만 6개의 지점을 운영하는 등 지난해부터 지방은행들의 수도권 진출이 늘고 있다. 물리적 지점만 늘어난 게 아니다. 신규 고객 확보를 위한 사이버지점 신설도 추진되고 있다.
◇“시중은행 공세 대응 못하면 끝장” 위기감=지방은행들이 이처럼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시중은행의 공세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다. 시중은행들이 포화상태에 이른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 진출을 가속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6개 지방은행의 지난해 영업수익(매출)을 모두 합해봐야 9조672억원이다. 반면 웬만한 시중은행은 한 해 영업수익은 수십조원에 달한다.
몇몇 지방은행의 경우 지역소재 기업이 점차 줄어들고 있어 주변 지역으로 영업을 확대해야 하는 과제도 떠안고 있다. 일부 지역에서는 지방은행끼리 경쟁을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고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지 못하면 결국 도태되고 만다는 위기의식이 지방은행 사이에서는 이미 팽배해 있다.
정호 부산은행 IT기획부장은 “시중은행들이 잇달아 금융지주사 체제로 전환하거나 전환을 준비하면서 점점 대형·겸업화하고 있다”며 “시중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지방은행의 경우 시중은행들의 행보에 맞서 제 때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대형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출현으로 기존 영화관들이 쇠락의 길을 걷게 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부산은행이 BS금융지주를 설립한 것도 결국 사업다각화를 통해 몸집을 불리기 위해서다. 부산은행은 3년 전부터 증권업 진출 등 지주사 설립을 위한 기반을 준비해왔다.
지난달 15일 부산은행을 포함해 BS투자증권, BS캐피탈, 부산신용정보 등 4개 자회사를 기반으로 출범한 BS금융지주는 조만간 IT자회사도 설립할 계획이다. 각 자회사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향후 부산은행의 과제로 남아 있다.
부산은행의 라이벌 은행인 대구은행도 다음달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금융지주사 설립 인가를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구은행은 대구신용정보와 카드넷 등 3개 회사를 중심으로 금융지주사 설립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내년 이후부터 여신전문금융사, 자산운용사, 저축은행 등으로 사업다각화를 추진해 종합금융그룹의 면모를 공고히 할 계획이다.
◇IT인프라 대대적 개편 추진=지방은행의 대형화와 겸업화가 주로 부산, 대구은행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면, 대대적인 IT인프라 개편은 대부분의 지방은행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부산은행이 20여년 만에 차세대시스템 구축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대다수 지방은행이 80~90년대에 구축된 노후화된 시스템을 정비하는 프로젝트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시중은행들은 최근 몇 년새 예외없이 차세대 프로젝트를 끝마쳤거나 진행 중이다. 안 그래도 낙후된 IT인프라를 보유한 지방은행들로서는 자극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빠르게 변화하는 금융환경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각종 신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IT인프라가 필요하다.
경남은행 IT부서의 한 관계자는 “고객의 거래패턴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고 새로운 거래기법을 지원하려면 정보시스템 고도화가 필요한 상황”이라며 “비대면 거래채널이 활성화됨에 따라 이를 지원하기 위한 유연한 시스템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경남은행뿐만 아니라 모든 지방은행들이 시스템의 노후화로 인해 운영비용과 관리의 비효율성, 복잡성이 증가하고 있다. 또 마케팅 대상고객이 다양화·세분화됨에 따라 관련 정보를 관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쟁력 제고 뿐만 아니라 임직원의 업무처리 효율성에 대한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이런 이슈들을 해결하기 위한 차세대 프로젝트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곳은 대구은행이다. 2009년 말부터 차세대 프로젝트에 착수한 대구은행은 올해 5월 신시스템을 오픈할 계획이다.
대구은행 최고정보책임자(CIO)인 정영만 IT본부장은 “차세대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이행과 변화관리를 통한 조기 안정화가 올해 추진할 가장 핵심적인 사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금융환경의 급속한 변화와 고객의 다양한 요구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선진 IT시스템을 구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대구은행의 뒤를 이어 지난해 7월 차세대 프로젝트에 착수한 부산은행은 내년 설 연휴 때 프로젝트를 마무리한다. 현재 막바지 개발 작업이 한창이며 올 6월부터는 통합테스트에 돌입할 예정이다. 부산은행은 차세대시스템을 통해 영업 경쟁력을 확보하고 고객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해 비즈니스 경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시중은행의 지방 진출도 경계해야 하지만 경남 지역에서 부산은행과 주도권 다툼을 벌여야 하는 경남은행 역시 차세대 프로젝트를 추진을 계획하고 있다. 올해 안에 컨설팅을 받아 실행 계획을 세우고 세부 수행과제를 도출할 예정이다.
경남은행 IT관계자는 “차세대 프로젝트를 통해 IT인프라를 미래형으로 구축하고 이를 토대로 은행의 경영을 효율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IT시스템을 단계적으로 구축해나갈 계획”이라고 소개했다.
내년 이후 차세대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는 전북은행은 현재 엔터프라이즈아키텍처(EA)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8월까지 현행 및 목표(to-be) 아키텍처를 분석하고 IT마스터플랜을 수립할 방침이다.
앞서 전북은행은 지난해 8월 IT의 비즈니스 지원 수준과 시스템 효율성, 조직역량, 성숙도를 진단하는 진단컨설팅을 추진해 향후 추진과제를 도출하고 이행전략을 수립했다. 이번 EA컨설팅은 당시 컨설팅 결과에 대한 상세화와 검증 작업인 셈이다.
차세대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다른 은행들도 시스템 고도화에 집중하고 있다. 수익구조 안정화와 지역에 특화된 마케팅 전개를 목표로 삼고 있는 제주은행은 지역과 고객에 대한 이해와 정보보유, 밀접한 관계 유지를 장점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제주은행은 최근 고객관계관리(CRM) 캠페인시스템 구축했으며 하반기부터 채널통합시스템 구축과 통합단말시스템 재구축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추진할 계획이다.
올해 영업수익 5000억원과 당기순익 1500억원 이상을 목표하고 있는 광주은행은 다양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향후 시장 상황에 따른 IT의 변화를 예측하고 대비책을 세우고 있다. 광주은행은 현재 데스크톱 클라우드 구축과 온라인거래 채널의 프로세스 개선을 추진하고 있으며 금고관리시스템과 차량형 이동점포 구축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IT투자의 효율성 제고 방안 고민=고객 확대를 위한 수도권 진출과 사이버지점 신설 등도 지방은행의 변화 노력 중 하나다. 이는 해당 지역에서의 영업만으로는 수익 증대에 한계가 있기 때문 새로운 영업망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광주은행은 지난달 서울 성산동에 마포금융센터지점을 개설해 지방은행 중에서는 가장 많은 6개의 지점을 서울에 운영하고 있다. 모든 지방은행들이 2~3개씩의 지점을 서울에 보유하고 있으며 전북은행은 현재 3개인 지점을 향후 5~6개로 늘릴 계획이다. 영업지역 확대는 모든 지방은행이 계획하고 실행하고 있는 전략이다.
지방은행들은 영업지역 확대 외에도 고객의 접근성와 이용편의성을 높여 고객 확대를 목표로 하는 사이버지점 신설, 특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라이빗 뱅킹(PB) 전문점 개설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구은행의 경우 지난달 PB 전문점 13개를 동시에 개점하고 지역 내 PB 시장 선점에 들어갔다.
지방은행들의 이런 변화 노력에는 필연적으로 IT시스템의 지원이 뒤따라야 한다. 하지만 IT투자가 시중은행만큼 많지 않으면서도 전체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높기 때문에 IT투자의 효율성 제고가 지방은행들의 고민이 되고 있다.
유영묵 제주은행 IT지원부장은 “막대한 IT인프라 구축 비용과 인력 운용의 효율성 제고는 현재 모든 지방은행 IT의 고민거리”라며 “제주은행은 이런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 신한금융그룹과 연계해 중장기 계획 수립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정된 예산과 소수의 인력으로 비즈니스를 효율적으로 지원하려면 그만큼 철저한 실행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광주은행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 신명호 광주은행 IT지원부장은 “IFRS시스템 등 환경 변화에 따라 의무적으로 도입돼야 할 시스템을 고려하면 IT비용 비율이 시중은행보다 높아진다”면서 “투자 규모와 수익성을 감안해 당행에 적합한 구축범위를 설정하고 최적의 투자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 확대와 다각화, 신시스템 구축, 사업지역 확대 등 현재 추진하고 있는 다양한 노력에 지방은행만의 이점과 지역적 특수성을 살린 상품개발이 추가된다면 충분히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지방은행들은 자신하고 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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