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소셜커머스 업체 그루폰의 한국 시장 진출이 `용두사미`(龍頭蛇尾)로 끝날 위기에 처했다. 연이은 판매부진에 이어 자체 서비스까지 경쟁사에 매각되면서 일각에서는 그루폰이 한국 시장에서 조기에 철수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설립 후 지난 20여일간 그루폰이 업데이트한 상당수의 거래(deal)는 참여자 수를 채우지 못해 무산됐다. 지난 1일에는 자체 운영사이트인 `프라이빗 라운지`마저 경쟁사인 위메이크프라이스 측에 인수됐다. 연이은 악재에 업계에서는 그루폰의 한국시장 진출이 충분한 준비 없이 이뤄진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화려한 진출 그러나…판매 부진으로 거래 중단 이어져
그루폰은 지난 2008년 미국 시카고에서 설립돼 전 세계 44개국에 3500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한 소셜커머스 1위 기업이다. 그러나 그루폰은 지난 14일 한국에 상륙한 이후 소셜커머스 선두 기업이란 명성에 걸맞는 실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한국 진출 첫 날, 그루폰코리아가 내놓은 상품은 유명 온라인 쇼핑몰 `위즈위드`의 5만원 상품권 반값 쿠폰이었다. 이날 그루폰은 5000장의 목표 판매량을 달성해 소셜커머스 업체 일일실적에서 2위 기록을 세우면서 기존의 명성을 입증하는 듯 했다.
그러나 소셜커머스코리아에 따르면 그루폰코리아는 이후 최소 판매 수량을 채우지 못해 거래가 성사되지 않는 상품이 속출할 정도로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픈 셋째날인 16일에는 11개의 상품 중 절반에 가까운 5개 상품의 판매가 구매자 수를 채우지 못해 중단됐다. 소셜커머스는 일정한 수의 구매 희망자가 채워지지 않으면 판매 자체가 이뤄지지 않는다.
그루폰은 국내 진출후 약 보름동안 거래량 16억7000만원, 시장 점유율 6.9%로 소셜커머스 업체 중 4위의 실적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국내 업체 티켓몬스터(104억8000만원, 43.4%), 쿠팡(68억7000만원, 28.4%), 위메프(45억7000만원, 18.9%)등이 기록한 성적에 비해 크게 떨어지는 수치다.
업계 관계자는 "진입 초기인 점을 고려하더라도 그루폰이란 브랜드의 명성을 고려한다면 실적이 부진한 것은 사실"이라며 "이대로라면 한국 포털 업계에서 구글이나 야후가 차지하는 것과 비슷한 위치에 머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속 사이트, 운영 보름 만에 경쟁사에 매각…자금이 없어서?
부진한 실적에 이어 운영한지 보름밖에 안된 자체 사이트를 매각한 것도 그루폰 코리아의 위기 상황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히고 있다.
지난 1일 그루폰 관계사인 제이드그룹 코리아에서 운영하던 `프라이빗 라운지`가 위메이크프라이스를 운영하는 나무인터넷 측에 인수됐다.
명품 브랜드 전문 소셜커머스인 프라이빗라운지는 그루폰코리아의 경영진이 운영하던 사이트로 지난 15일부터 오픈했다. 그루폰이 서비스를 시작한지 불과 보름 만에 자체 사이트가 경쟁업체로 인수된 것이다.
프라이빗 라운지를 운영해온 제이드그룹 코리아는 그루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관계사다. 제이드그룹 코리아의 대표이사 역시 윤신근 그루폰코리아 공동대표가 겸임하고 있다.
관련업계는 이번 결정이 그루폰 코리아의 부실한 재정 상태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루폰이 서비스를 시작한 지 불과 며칠만에 경쟁사에 자체 사이트를 인계한 것은 그만큼 경영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셜커머스 업체를 운영하는 한 관계자는 "그루폰측이 아닌 프라이빗 라운지 측으로부터 직접 인수 요청을 받은 적이 있다"며 "그루폰측이 갑자기 투자금을 회수한다고 해 프라이빗 라운지 측 직원들이 막막한 심정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한국시장 이해 부족…일각에선 철수 가능성까지
연이은 성적 부진에 관계사 매각이란 악재까지 더해지면서 업계에서는 그루폰의 한국 시장에 대한 학습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럭셔리 미팅파티 상품을 판매하는 등 국내 시장의 특성과 동떨어진 제품을 내놓고 있다는 것이다.
상품 내용이나 판매 방식,서비스 등에서 국내 소셜커머스 업체와 차별화가 되지 못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그루폰코리아는 상품 구매 후 7일 내 환불 원칙 등 고객서비스(CS)를 강점으로 내세웠지만 쿠팡 등 국내 업체들도 동일한 서비스를 실시 중이다. 여기에 서울·부산 등 6개 지역에만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영업망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점도 약점으로 지목된다.
예상외의 부진이 계속되면서 그루폰이 한국시장에서 조기에 철수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그루폰의 한국 진출은 단기적 성과에 연연하는 본사측 전문 경영인에 의해 이루어졌다"며 "해당 경영자가 퇴진하거나 기업상장(IPO) 등이 추진되면 한국 시장에서 철수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판매가 계속 지지부진할 경우 프라이빗 라운지처럼 아예 그루폰 코리아가 정리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상황을 바꾸려면 지명도를 높일만한 획기적인 상품(deal)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그루폰 코리아 관계자는 "시장에 진입하는 시기로 실적부진이나 철수 등에 대해서는 아직 고민해 본 적이 없다"며 "대형 상품으로 지명도를 높이기보다는 지역 기반의 소셜커머스를 실현한다는 초심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일경제 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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