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10년 전으로 돌아갔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판이에요."(도요타 관계자) 국내에서 월간 수입차 판매대수가 1만대를 돌파하는 등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지만 모든 수입 브랜드가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일본차 얘기다. 불과 2년여 전인 2008년 35%를 넘어섰던 일본산 수입차 시장점유율은 지난달 절반이 채 안 되는 17.1%로 추락했다. 점유율뿐만 아니라 판매대수도 줄었다. 도요타는 올해 들어 3월까지 실적이 작년 동기보다 11.3%, 혼다는 17.1%, 닛산은 무려 46.3%나 줄었다.
반면 BMW와 메르세데스-벤츠, 폭스바겐 등 유럽 수입차 업체들의 활약은 눈부시다. 최근 2년간 BMW와 벤츠가 베스트셀링 모델 1위를 번갈아 내며 최근 시장점유율이 70%를 넘어서기 시작했고 BMW는 올해 들어 100%에 가까운 실적 상승세를 기록 중이다.
도요타는 배수의 진을 쳤다. 4월 한 달간 최고가 모델인 LS시리즈를 비롯해 GS시리즈, 스포츠카 IS F 등 총 6개 모델을 1000만원이나 할인하는 프로모션을 6일 내걸었다. 1억~2억원대 LS 모델뿐만 아니라 7850만원짜리 GS350도 1000만원 내린다. 기존 렉서스 고객은 300만원 추가로 할인해준다. 최대 10%가 넘는 충격적인 가격 할인폭이라는 게 업계 반응이다.
사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본차 브랜드는 유럽에 비해 가격은 저렴하면서도 좋은 품질로 이름이 높았다. 2001년 렉서스를 시작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한 일본 수입차 업체들은 이듬해 수입차 점유율을 18.4%까지 차지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특히 2년 전 도요타가 캠리와 프리우스 등을 들여올 때만 해도 "이제 수입차 업계뿐만 아니라 현대차도 큰일 났다"는 경계와 기대가 상당했던 게 사실이다. 그랬던 이들 일본차가 최근 들어 상대적으로 국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분석이다.
가장 큰 요인으로 늦어진 신차 교체 주기가 꼽힌다. 유독 새로운 것, 최신 유행에 민감한 국내 소비자 입맛에 일본 기업 특유의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식의 늦은 모델 출시 속도가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렉서스 대표 모델인 ES350은 2006년 출시된 후 지금까지 큰 변화가 없었던 데 비해 국산차 브랜드는 크고 작은 변화를 통해 4~5년에 한 번씩 신모델을 꾸준히 내놓고 있다.
BMW와 벤츠도 지난해 주력 모델인 5시리즈와 E클래스 풀체인지 모델을 출시하며 소비자들의 넘쳐나는 수입차 구매 욕구를 충족시켜 주느라 바쁘다. 지난해 벤츠 E300은 6228대, BMW 528은 5130대가 판매된 반면 렉서스 ES350 판매액은 2000대를 간신히 넘겼다.
도요타 관계자는 "엔고ㆍ리콜에 이어 올해는 대지진이라는 악재를 만났다"며 "올해 예정된 신차 출시 스케줄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도요타 캠리, 닛산 알티마, 혼다 어코드 등 각 브랜드의 대표 중형세단 판매는 더욱 신통치 않다. 이들은 현대차의 신형 그랜저와 쏘나타, 기아 K5ㆍK7 등과 직접 경쟁을 선언했지만 성능에서 큰 차이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가운데 3년 전보다 30% 넘게 오른 환율 때문에 가격 경쟁력마저 ㅃ떨어지고 있다.
일본 수입차에서 특색 있는 모델을 찾을 수 없는 것도 시장점유율 하락의 주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도요타가 준중형 세단 코롤라를 출시했고 혼다는 6월을 목표로 2012년형 시빅 출시를 예정하는 등 2000㏄ 이하 엔트리 모델에 기대를 걸고 있지만 아반떼 등 토종 모델들이 품질 경쟁력과 1000만원 이상 싼 가격으로 버티고 있어 쉽지 않은 싸움이 될 전망이다. 코롤라는 인기 탤런트 구혜선 씨를 모델로 내세우며 한 달 전부터 사전계약에 돌입했지만 실적은 100대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유럽 업체들은 2000㏄ 미만 배기량에서도 `고연비`를 무게로 질주하고 있다. 폭스바겐 골프와 CC 등이 ℓ당 20㎞ 안팎의 연비를 자랑하며 소비자 관심을 끄는 상황이다.
닛산이 8월을 목표로 화제의 박스카 큐브를 들여오는 등 시장 관심을 끌려고 하지만 이미 늦었다는 평가도 나온다. 관심 있는 사람들은 비공식 수입 경로를 통해 이미 구입한 데다 기아가 비슷한 시기에 박스형 경CUV를 내놓을 것으로 알려져 가격 경쟁에서도 호락호락하지 않을 전망이다.
[매일경제 이승훈 기자/김은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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