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삼성전자 단일 회사가 우리나라 전체 IT 수출액의 40% 이상을 차지했다. 삼성전자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세금을 내는 기업이자 또한 최다 인력을 채용하는 곳이다. 삼성전자 하나가 증시 시가총액의 10% 가까이를 차지한다.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헝가리의 국내총생산(GDP)과도 맞먹는다. 삼성전자 하나가 잘되면 우리나라 IT 업계, 아니 전체 산업계가 잘되는 것처럼 보이고 반대로 부진하면 모두가 잘못된 것처럼 비치기도 한다. 우리 경제에는 삼성전자로 인한 착시 효과마저 있는 게 사실이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가는 한 우리에게 삼성전자는 호불호와 상관없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인 셈이다.
얼마 전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은 사내방송을 통해 내보낸 CEO 메시지에서 “국제 유가 불안, 일본 대지진, 선진시장의 수요 침체 등으로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위기와 기회에 선행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면서 “모든 분야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으로 시장을 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역시 이건희 회장이 입버릇처럼 강조하는 ‘위기론’이다. 지난해 사상 최대 실적을 구가한 삼성전자지만 언제나 그랬다. 위기 상황이 아니더라도 선제적 대응의 중요성이 늘 최상위 경영 원칙이었고, 그 문화는 모든 임직원들에게 뼛속 깊이 체질화됐다.
과거와 달라진 점이라면 위기관리와 더불어 개방적 사고와 혁신, 신수종사업 등 ‘새로움’을 강력하게 추구하고 있는 모습이다. 어쩌면 이조차도 불투명한 미래 경영 환경에 대비하기 위한 위기 관리술인 셈이다. 최 부회장은 CEO 메시지에서 “지속적 성장을 위해 신수종 사업을 적극 발굴하고 추진해야 하며 올해를 그 원년으로 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했다. 과거 말로만 신규 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이젠 추진 강도가 사뭇 다를 것이라는 뜻이다. 외부 자원과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이른바 ‘오픈 이노베이션’도 거론했다. 여타 글로벌 IT 기업들과 달리 인수합병(M&A)에 극히 보수적이었던 예전의 모습을 떠올린다면 격세지감의 의지로 보인다.
신간 ‘삼성전자 3.0 이야기’는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선 비결과 더불어 삼성전자의 진정한 위기가 무엇일지 현실감 있게 진단한다. 아이폰 열풍으로 삼성전자의 휴대폰 사업이 일시 충격을 받은 것은 한 예에 불과하다. 삼성전자에 내재된 위기의 근원은 바로 창조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역사를 보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장을 선도하거나 ‘아이콘’으로 불릴 만한 제품을 내놓은 적이 없다. 세계 시장 1위라는 D램이 그랬고 LCD도 마찬가지다. 혹평일지 모르나 시장에 ‘아이콘’ 제품이 등장하면 대대적인 투자를 통해 가장 성공적으로 모방해서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어’ 정도였다.
책은 삼성전자가 이제 벤치마킹 대상이 사라진 상황에서 진정한 위기를 느껴야 한다고 설파한다. 이병철 선대 회장이 ‘도쿄 구상’으로 1.0 시대를, 이건희 회장이 ‘프랑크푸르트 선언’으로 2.0 시대를 각각 열었다면 시장의 선도자로서 3.0 시대를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삼성전자 스스로 당장 체질을 바꾸기 쉽진 않겠지만 새로운 3.0 시대를 슬기롭게 만들어갈 수 있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이채윤 지음. 북오션 펴냄. 1만5000원.
서한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