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BRICS) 5개국 정상들이 글로벌 금융시장 불안을 야기해 온 단기투기자본(핫머니)에 대한 강력한 규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또 국제통화기금(IMF) 특별인출권(SDR)을 국제통화로 활용하고 원자재 확보에 공동 노력을 기울이자는 데 합의했다.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브릭스 5개국 정상들은 14일 하이난섬 싼야에서 제3차 정상회의를 갖고 이 같은 내용을 뼈대로 한 `싼야 성명`을 발표했다.
이날 성명은 신흥 경제 강국들이 기존 서방 중심의 금융시스템에 반기를 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 등 5개국 정상은 성명서에서 "개발도상국들은 선진국의 느슨한 통화정책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자산 버블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국격을 넘나드는 거대한 자본 흐름의 위험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일본, 유로존 국가들의 저금리 정책으로 투기성 자본이 금리가 높은 개도국으로 밀려들어 브릭스를 비롯한 신흥 경제권은 인플레이션 압력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브릭스 정상들은 탈달러화 움직임을 가속하는 행보로 SDR를 달러 대안으로 활용하자는 중국 측 주장에 동조했다. IMF와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에 대한 개도국 역할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는 데 대해서도 한목소리로 찬성했다.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은 "지도자의 선택 문제를 포함해 IMF와 세계은행 등 금융기구를 개혁해야 한다"며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것으로 현재의 요구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유럽이 돌아가면서 세계은행과 IMF 총재 자리를 독식해 온 관행을 끝내자는 의미다. 제이컵 주마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도 "(브릭스 정상들은) 모두 공정하고 평등한 세계 금융 질서를 위해 국제 금융시스템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지지했다.
5개국 정상들은 또 "식품과 에너지 등 원자재 가격이 급변하면 세계 경제성장에 위협 요인이 된다"며 "원자재를 확보하고 생산효율을 높이기 위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브릭스에 참여한 뒤 처음 열린 이번 회의에서 브릭스 국가들은 미국 등 서방국에 대항해 `정치세력화` 움직임을 뚜렷이 했다. 최근 잇단 중동 사태에 대해 서방 국가들과 각을 세운 게 대표적이다. 이들은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의 리비아 공습을 비롯한 북아프리카ㆍ중동에서 무력 개입을 반대하고 대화와 불간섭으로 사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중국 러시아 등 5개국은 대부분 리비아 비행금지구역 설정에 관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표결 때도 기권하는 등 중동 사태 군사 개입에 비판적이었다. 당초 경제 협력에 초점을 맞춰 태동한 브릭스가 정치 안보 분야까지 협력을 확대해 미국과 유럽 위주 국제 질서에 반기를 들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양제츠 중국 외교부장은 기자회견에서 "브릭스 정상회의는 참여한 5개국 간 협력ㆍ연대ㆍ강한 신뢰를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졌다"며 "국제 통화 시스템 혼란, 원자재 가격 상승, 기후변화협약의 정치적 이해관계 등에 대해 5개국이 공통된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의지를 반영하듯 관계가 껄끄러웠던 중국과 인도는 양국 협력을 선언하고 협력기구를 만드는 방안에 합의했다.
한편 하이난섬 북쪽 보아오에서는 제10회 보아오포럼이 `포용성 성장`을 주제로 14일부터 2박3일간 일정에 돌입했다. 보아오포럼은 15일 오전 개막식에서 후진타오 주석을 비롯해 브릭스 정상들과 김황식 국무총리, 호세 루이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 등 외국 주요 인사들이 기조연설을 한 뒤 지속 가능한 경제 발전 해법을 놓고 열띤 토론이 벌어질 예정이다.
■< 용어설명 >
SDR(special drawing rightsㆍ특별인출권):IMF가 발행하는 국제준비통화다. IMF 가맹국에 출자비율에 따라 무상으로 배분되며, 가맹국이 외환이 부족할 때 다른 나라로부터 빌려 국제결제에 쓸 수 있는 무형의 대체통화다.
[산야·보아오=매일경제 신현규 기자/베이징=매일경제 장종회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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