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신용평가 독립선언` 이용희 대표의 꿈

40년 전 우주여행을 꿈꾸던 한 청년이 세계 각국 정부의 생사여탈을 가르는 글로벌 신용평가사의 편향된 시각을 바로 잡는 선봉장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5개국(말레이시아ㆍ태국ㆍ인도네시아ㆍ필리핀)과 남미 1개국(브라질) 정부의 신용등급을 평가해 지난 13일 발표한 한신정평가의 대표이사를 맡은 이용희 부회장의 얘기다.

"우리가 할 수 있겠어"라며 모두가 시큰둥했지만, 이 부회장은 특유의 집념으로 국가신용평가의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다.

한국의 시각으로 외국 정부를 독립적으로 평가하고 신용등급을 매기는 시대를 열었음에도 이 성과는 이 회장에게 마중물에 불과하다. 갈증을 해결하려면 아직 멀었다는 얘기다.

국제 금융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디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피치 등 영ㆍ미계 신평사와 본격적으로 경쟁하는 단계까지 매진하겠다는 게 그의 각오다.

이 부회장은 15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만의 객관적이고 다양한 견해를 제공해 국제 금융시장의 효율적인 작동에 이바지한다면 글로벌 신평사의 독점체제를 깨는 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문제가 발생하는 나라는 모두 선진국이다. 하지만,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선진국에 대해 사전 경고를 보내지 않았다. 이런 불균형한 시각은 고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2007년부터 한신정평가 대표를 맡자마자 국가 신용등급을 매기려는 준비에 착수했다.

반대도 만만찮았다. 대부분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10년 앞을 내다본다는 심정으로 국내에 한정된 패러다임을 바꾸는 데 주력했고, 결국 6개국의 신용등급을 매기는 데 성공한 것이다.

2008년 전세계를 강타한 글로벌 금융위기가 오히려 우여곡절을 딛고 일어나는데 좋은 기회가 됐다.

"우리 금융시장이 발전해 10∼20년 후에 금융허브의 역할을 하게 된다면 지금 하는 일들이 시장 발전에 큰 밑거름이 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과정에서 진짜 `위기`에 빠진 글로벌 신평사들의 모습을 보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더 느꼈다"고 회고했다.

온갖 악조건에서도 이번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전세계를 무대로 종횡무진으로 움직인 끈질긴 정신력과 성실성 덕분이었다.

외국 정부의 신용평가를 해 온 일본의 R&I와 중국의 다공(大公) 등과 제휴해 평가방법을 정립했고, 지난해 6월 이후에는 신용평가 협조요청에 응한 6개국을 상대로 현지실사와 면담을 했다.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 대표 기업과 금융기관 등을 일일이 돌며 면담과 자료 검토 등을 했다. 각국 재정장관, 중앙은행 총재 등이 직접 나서 자국의 경제상황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 부회장은 "한 국가당 약 1주일 정도 실사했는데 만나야 할 사람들이 너무 많아 식사도 못 할 정도였다"고 힘들었던 과거를 떠올렸다.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신용평가가 한국의 경쟁력을 높이면서 자본시장 발전에도 큰 역할을 할 것으로 확신했다.

"정부 신용등급은 해당국의 이자율을 결정하는 중요한 지표다. 평가 대상 국가가 우리나라에 와서 채권을 발행하거나 국내 투자자들이 외국에 투자할 때 좋은 투자지침이자 지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신정평가는 이번에 신용등급을 부여한 6개국 외에 멕시코, 터키도 평가하기로 했으며 인도와 아르헨티나, 슬로베니아, 페루 정부와도 실사 및 면담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

당장 돈이 안 될 것 같은 사업모델인 것 같다는 질문에 이 부회장은 "단기간에 돈이 되지는 않는다. 다만, 10년 정도 앞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경제 위상이 높아지는 만큼 금융시장과 자본시장도 동시에 발전해야 한다. 외국 기업이나 정부가 우리나라에 와서 채권을 발행한다고 할 정도로 성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과 소련의 우주개발 경쟁이 한창이던 1969년 서울대 천문기상학과에 입학해 공학도의 길을 걷던 그는 대학 4학년 때 우연히 본 행정고시에 합격해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30년에 걸친 경제관료의 길을 걸으며 옛 재정경제부 국민생활국장과 駐OECD대표부 공사를 역임했고 2005년에는 한국증권선물거래소(현 한국거래소) 상임감사위원을 지냈다.

2006년 한국신용정보 사장으로 나이스그룹에 합류했으며 이듬해부터 한신정평가 대표를 맡았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