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한 정책금융공사 사장은 최근 `잠재적인` 하이닉스 인수 후보군 대기업과 잇따라 접촉했다.
외환은행이 주채권은행인 하이닉스채권단은 지난 8일 실무자 협의회를 한 데 이어 이번주 정식 주주협의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하이닉스의 새로운 매각조건이 결정된다. 이미 유 사장이 "신주발행 등 다양한 방식을 고려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매각 추진은 채권단의 투자금 회수보다 하이닉스 새 주인 찾기에 무게가 실릴 전망이다.
투자자들에게는 채권단이 내놓는 `최후의 카드`가 공개되는 셈이다.
하이닉스 세일즈가 다시 잰걸음을 내고 있다. 아직 인수 후보 대기업의 입장은 냉랭하다. 그러나 채권단 내부에선 "새 주인 찾는 게 우선"이라는 절박함이 커 인수조건이 상당히 유연해질 것이라는 게 변수다. 현대건설, 대한통운에 이어 M&A시장 최대어로 꼽히는 하이닉스의 향방은 국내 반도체업계는 물론 재계 판도에도 영향이 지대할 것으로 보인다.
◆사전작업으로 분위기 잡기=6일로 잔금지급이 마무리된 현대건설과 예비입찰이 끝난 대한통운의 뒤를 잇는 M&A시장 매물은 대우조선해양과 하이닉스다. 특히 수차례 매각이 지연된 하이닉스는 규모와 업계 위상을 고려할 때 단연 올해 최대어다.
하이닉스는 2010년 연결 재무제표 기준으로 12조990억원의 매출과 3조2730억원(영업이익률 27%)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창사 이래 최대 실적잔치였다. 반도체 시장에선 삼성전자와 함께 승자독식 구조가 정착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문제는 조단위를 각오해야 하는 부담과 인수가격이다.
지난주 금요일 하이닉스 주가는 장중 3만4150원을 찍어 신고가를 경신했다.
이 가격을 기준으로 하면 경영권 프리미엄을 고려하지 않은 채권단 지분(15.86%)의 단순 인수가격만 3조원이 훨씬 넘는다. 여기에 경영권 프리미엄과 설비투자비를 고려하면 최소 5조원 이상의 돈은 가지고 있어야 인수를 고려할 수 있다는 계산이 된다.
외환은행과 정책금융공사 등 채권단은 이런 상황을 고려해 사전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우선 유 사장은 최근 LG는 물론 주요 대기업군 최고경영자(CEO)와 연쇄 접촉해 사전 의사 타진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유 사장은 앞서 현대건설 매각종료 기자간담회에서 "신주발행 등 다양한 방식을 고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유 사장은 조정된 매각조건 등을 대기업들에 상세히 설명하고 관심을 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주발행 등 매각조건이 최대 관심=기업 매각은 채권단이 보유지분 중 기업지배가 가능한 지분을 시장가격+경영권 프리미엄을 받고 넘기는 것으로 끝난다.
하이닉스채권단이 수차례 블록세일로 15%대의 지분만 남긴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인수후보군 대기업이 이 정도 지분을 인수하는 것도 부담을 느낀다는 점이다.
그래서 나온 채권단의 마지막 카드가 신주발행이다. 채권단 지분을 전부 인수해 경영권을 갖고, 여기에다 신규투자까지 하려면 자금부담이 크다는 투자자들의 불만을 해소하는 타협안을 낸 것이다.
앞서 채권단은 2010년 3월 하이닉스 정관을 바꾸면서 신주발행 시 제3자 배정대상에 `전략적인 투자자`도 포함시켰다. 최악의 경우 내놓을 타협안을 미리 염두에 둔 것이다.
인수를 희망하는 측이 채권단 지분과 함께 신주를 사들여 경영권을 확보할 때 장점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신주를 인수할 경우 가격이 싸다. 신주발행은 통상 시장가격 수준에 이뤄지기 때문에 경영권 프리미엄을 주지 않아도 된다. 여기에 신주 인수한 자금은 고스란히 회사에 남아 신규투자에 재원으로 쓸 수 있다.
한 번 자금을 쓰면서 인수 목적과 투자금 준비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셈이다.
반면 채권단은 남은 지분을 한번에 처분하지 못하는 단점을 감수해야 한다. 인수자 입장에선 신주인수 비중을 높이기를 원하기 때문에 자칫 보유지분 대부분을 그대로 떠안아야 할 우려도 있다.
채권단 관계자는 "자기 지분을 팔아야 하는 채권단이 신주발행까지 허용하는 것은 그만큼 매각의지가 높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매일경제 김태근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