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IBM이 농협 전산망 장애 사태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고성능 서버 ‘메인프레임’을 기반으로 한때 ‘금융 IT’의 최강자로 군림하던 무용담을 뒤로 하고 속절없이 추락하고 있다.
한국IBM은 지난 2009년부터 금융 IT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매년 크고 작은 문제로 구설수에 올랐다. 업계에서는 이 때문에 이번 농협 사태가 우발적인 사고가 아니라는 데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그동안 속으로 곪은 한국IBM의 구조적 문제가 드디어 터졌다는 얘기다. 금융권 주요 고객들도 이참에 “한국IBM과 일을 하면 의사결정이 너무 느려 서비스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는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도대체 한국IBM에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툭 하면 터지는 IBM 금융사고=한국IBM은 지난 2009년 동부생명 차세대 프로젝트 사업을 추진하다 ‘금융 IT 강자’라는 명성에 ‘먹칠’을 했다. 동부생명이 IBM이 수행하던 개발부문 주사업자를 프로젝트 도중에 동부CNI로 바꿔 버렸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수행 중 중도하차하는 사례는 매우 이례적이어서 한국IBM의 개발 능력에 의문이 제기됐다.
지난해에는 한국IBM이 구축한 국민은행 전산시스템이 장애를 일으켜 일대 혼란을 겪었다. 당시 문제를 일으킨 장비는 IBM이 가장 안전하다고 자랑하는 메인프레임과 연관된 문제여서 적지 않은 파문을 낳았다.
이번 농협 중계서버 문제까지 최근 3년 새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금융 IT에서 대형 사고를 기록하게 됐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국지사=빈번하는 금융사고로 표출된 한국IBM의 위기는 IBM 본사의 코리아 정책이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IBM 장비와 서비스를 이용 중인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한국IBM의 가장 큰 문제는 의사결정 권한이 없다는 것”이라며 “고객의 요구를 상부조직인 헤드쿼터가 일일이 결정하다 보니 정책 결정 시기를 놓치거나 현지 사정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갈수록 서비스 품질에 불만이 쌓인다”고 토로했다.
IBM 협력업체 한 임원은 “고객지원 권한은 물론이고 심지어 인사권마저 헤드쿼터인 GMU(글로벌 마켓 유닛)에서 좌지우지한다”며 “이러다 보니 한국IBM 직원은 물론이고 아웃소싱 전문 자회사인 삼주시스템 직원들의 전반적인 프로세서 관리나 보안, 서비스품질 유지 등이 점점 나태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이번 농협 사태 이후 한국IBM에는 ‘외부 함구령’이 떨어졌다. 헤드쿼터에서 지침이 내려오기 전에는 한국지사에는 아무런 재량권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실패한 코리아 전략=한국IBM의 금융사업이 갈지자걸음을 걷는 시기는 IBM의 코리아 정책이 바뀐 시점과 거의 맞아떨어진다. 한국IBM은 3년 전 일본에 있는 아시아퍼시픽에서 GMU로 소속이 바뀌었다. GMU는 중국·인도 등 신성장 40여개 국가가 포함돼 있다.
그동안 GMU 국가 대부분이 매년 10~30%를 성장하는 데 비해 한국IBM은 2~3% 성장에 그쳤다. 심지어 마이너스 성장도 기록해 GMU 국가 가운데 성장률이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이때부터 한국지사 권한은 크게 위축됐다. 대부분 의사결정을 헤드쿼터에서 내리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IBM 직원은 “신성장 국가와 비교해 한국지사가 천덕꾸러기로 전락하면서 본사에서 한국지사를 무시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며 “최근에는 대규모 감원설이 돌고 있는 가운데 권고사직 통지서를 받은 사람도 나오고 있다”고 귀띔했다. 검찰 조사에서 농협 사태의 과실이 한국IBM에 있다는 결론이 나오게 되면 후폭풍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한국IBM 실적 추이 (단위:억원)
자료 : 금융감독원
장지영기자 jya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