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정유사들의 딜레마

 정유사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SK에너지가 20일 0시를 기해 주유 시 모든 카드에 대해 리터당 100원씩 할인해준다고 발표하면서부터다.

 SK에너지는 이번 주유 할인으로 카드 고객들은 늘어나겠지만 20~30%에 달하는 현금 고객들이 이탈할까봐 노심초사다. 카드 할인이다 보니 주유소 가격표가 예전과 같아 현금 고객들의 발길이 뜸해졌다는 것이다. 물론 현금 결제를 해도 OK캐시백으로 돌려주기는 하지만 적립 카드가 있어야 한다.

 할인 범위가 확대돼 카드 사용 고객이 늘어나도 달갑지 만은 않다. 원가 이하로 판매하는 것이라 고객이 몰릴수록 손해가 더 나기 때문이다. SK에너지는 당초 한 달에 1200억원의 손실을 예상했지만 더 커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나머지 정유사들은 출혈을 감수하며 주유소 공급가격을 할인했지만 유통 과정에서 대부분 흡수돼 실제 효과는 미미하다며 고객들의 외면을 받고 있다. 손해는 손해대로 보고 욕은 욕대로 먹는 격이다.

 게다가 SK에너지의 카드 할인으로, 정유사들은 카드할인 시스템 도입에 대한 압박이 커졌다. 카드시스템 도입에 1~2일이면 충분해 도입을 안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카드 할인을 해주려면 당장 주유소 공급가격을 리터당 100원 올려야 한다.

 GS칼텍스는 카드할인 시스템을 준비하다가 시간상 문제로 주유소 공급가 할인으로 방식을 바꾼 경우라 카드 할인에 대한 압박이 심하다. 현대오일뱅크와 에쓰오일의 시름은 더 깊다. 당장 카드할인 시스템을 도입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문제는 현금 고객이다. SK에너지의 경우 OK캐시백을 통해 현금 고객에게 포인트를 제공하지만 이들 정유사는 이런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고객을 위해서는 카드 할인이 가장 효과적이다. 주유소 가격은 오르겠지만 고객은 늘 100원씩 할인받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유사들은 가격을 낮추는 석 달 동안 총 8000억~9000억원 정도의 손실을 예상하고 있다. 그럼에도 소비자의 따가운 시선을 피하기 어려운게 현실이다.

 정유사가 손실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소비자의 따가운 시선 만이라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유창선기자 yuda@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