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통신부 직제개정안 협상은 진전이 없었다. 정보통신부와 총무처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1996년 5월 10일
박성득 정통부 기획관리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해킹보안협회장)은 이날 오후 총무처 조직국장실에서 최임규 국장(국민고충처리위원회 사무처장 역임, 현 백석대 교수)과 만나 실현 가능한 타결안을 놓고 심도 있게 협의했다.
정통부 직제 개정안은 2실 5심의관 20과였다. 정보통신정책실에 2심의관과 8과, 정보화기획실에 3심의관 12과를 두는 안이었다. 국가정보화를 제대로 추진하려면 그에 걸맞은 조직 신설은 필수였다. 초고속정보통신기획단장을 겸직하던 정홍식 정보통신정책실장(정통부 차관, 데이콤 부회장 역임)은 국회와 청와대 등으로 뛰어다녔다.
#5월 13일
윤웅규 총무처 차관(작고)실에서 이계철 정통부 차관(한국통신 사장 역임)과 박 실장이 윤 차관을 만나 두 부처 간 이견(異見)을 조율했다.
#5월 16일.
총무처는 정보화기획실을 신설하되 1급 보직인 정보통신정책실을 국(局)으로 축소개편하는 안을 제시했다. 정통부는 5월 17일 재정경제원 3실(예산실과 세제실, 금융정책실) 등 다른 부처 사례를 제시하며 총무처에 2실 안을 강력히 주장했다.
그날 최 국장은 박 실장에게 전화로 “실무진에서는 정통부가 요구한 2실 안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하지만 장관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면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이석채 장관(현 KT 회장)은 조해녕 총무처 장관(내무부 장관, 대구직할시장 역임, 현 대구세계육상조직위원장)에게 거듭 협조를 요청했다.
#5월 20일
총무처는 정보화기획실은 2심의관 5과로, 정보통신정책실은 1심의관 4과로 하며 정보통신지원국은 4과로 하자는 진전된 안을 다시 제시했다. 총무처 윤 차관은 이런 내용을 정통부 이 차관에게 전화로 통보했다.
두 부처는 이 안을 놓고 막바지 조율과정을 거쳐 최종 직제개정안에 합의했다.
확정안은 정보화기획실은 2심의관 6과로 하고 정보통신정책실의 경우 2심의관 5과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로 인해 정통부 조직은 기존 2실 5국 5심의관 28과 7담당관에서 3실 4국 8심의관 30과 10담당관으로 바뀌었다. 직제개정으로 1실 2심의관 5과가 더 늘어난 것이다.
2개월여의 밀고 당기는 고달픈 직제개정안 험로(險路)는 이렇게 마무리됐다. 이 무렵 두 부처 협상라인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지칠 대로 지친 상태였다.
최 조직국장의 말.
“업무를 놓고 보면 총무처와 정통부는 갑(甲)과 을(乙)의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중간에서 박 실장께서 두 부처 입장을 조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 장관과 박 실장 등의 노력으로 정통부에 정보화기획실을 신설했고 그것이 정보통신강국 구현의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총무처도 정보화 전담조직의 필요성은 공감했지만 정통부가 큰 조직을 요구해 이를 조율하는 일이 정말 힘들었습니다.”
정부는 6월 11일 정보화추진위원회를 열어 국가기본발전전략인 정보화촉진기본계획을 확정하고 정통부 조직개편안도 처리했다. 정통부는 이날 정보화기획실 신설에 따른 실·국별 업무분장안 마련 및 인계인수를 위한 작업반을 구성했다. 반장은 서영길 정책심의관(티유미디어 사장 역임, 현 세계경영연구원 창조경영연구소장)이 맡았다.
박 실장의 말.
“부처에서 1급 늘리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이석채 장관이 김영삼 대통령에게 두 번이나 이 사안에 관해 보고한 것으로 압니다. 그만큼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어요. 이 장관께서 큰일을 하신 것이죠.”
정통부 직제개정안은 6월 13일 차관회의를 거쳐 18일 국무회의 안건으로 상정됐다.
박 실장은 국무회의 하루 전인 6월 17일 기자실에 들러 정보화기획실 신설에 관해 사전 브리핑을 했다.
누가 1급 자리에 올 것인가.
1급 보직인 정보화기획실장 자리가 신설되자 후임인사에 관심이 집중됐다.
정통부 안팎에서 후임 하마평이 나돌았다. 재경원 등 외부에서 올 것이라는 설과 내부 발탁설이 혼재했다.
1996년 7월 5일.
정부는 안병엽 재정경제원 국민생활국장을 초대 실장으로 발령했다. 외부 인사 기용의 신호탄이었다. 예고했던 일이었다. 이석채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정통부를 정책부서로 격상시키겠다”고 공언한 터였다. 이를 위해 경제교육을 강화하고 외부 인력도 충원하겠다고 밝혔다. 국가정보화정책을 정통부가 주도하겠다는 의지였다.
안 실장은 고려대를 졸업하고 행시(11회)에 합격, 경제기획원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경제기획원 감사관과 공정위 독점관리국장, 재경원 국민생활국장 등을 지낸 경제관료 출신이다.
안 실장의 회고.
“그 무렵 승진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국회 전문위원 등으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처음 정보화기획실장 이야기가 있었는데 ‘안 가겠다’고 했습니다. 정보통신 분야는 아무래도 낯설잖아요. 그런데 두 번째 그런 권유를 받았어요. 외부 지인들과 거취문제를 상의했습니다. 언론계 친구들은 ‘무조건 가야 한다’고 말하더군요.”
그는 일본 나카소네 총리 시절 일본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에 유학할 때 국가정보화에 관한 리포트를 읽고 그 중요성은 인식하고 있었다.
그의 증언.
“묘묙을 옮기면 잘 자라는데 저는 고목(古木)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묘목도 아니잖아요. 망설였는데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 등의 경험에 정보통신 기술을 접목하면 국가정보화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결정을 했습니다.”
그는 정통부 전입 이후 승승장구했다. 정통부 정보통신정책실장과 차관을 거쳐 2000년 2월 정통부 장관에 취임했다. 이후 한국정보통신대학교 총장과 17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현재 피닉스자산운용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정보화기획실장 아래 정보화기획심의관과 정보기반심의관 등 국장급 심의관 2명과 기획총괄과, 정보화제도과, 정보화지원과, 초고속망기획과, 초고속망구축과, 정보보호과 등 6과를 두었다.
정보화기획심의관은 천조운 초고속기획단 부단장이, 정보기반심의관에는 진동수 재경원 산업자금담당관이 발령났다.
1973년 대학 3학년 재학 중 20세로 행정고시 최연소 고시합격의 영예를 안은 천 심의관은 출중한 능력을 인정받아 정통부 전파방송관리국장과 중앙전파관리소장을 거치면서 주위의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1999년 7월 지병으로 일찍 타개해 주변의 안타까움이 컸다. 그가 국장급일 때 그의 대학 친구 중 고시에 합격해 공직생활을 시작한 이들은 사무관급이었다고 한다.
진 심의관은 정통부를 거쳐 청와대 금융비서관과 조달청장, 재경원 차관, 한국수출입은행장, 금융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정보화기반심의관 아래 △기획총괄과장에는 노준형(정통부 차관, 장관 역임, 현 서울과학기술대 총장) △정보화제도과장 유영환(정통부 차관, 장관 역임, 현 한국투자증권 부회장) △정보화지원과장 정경원(충청체신청장, 우정사업본부장 역임, 현 정보통신산업진흥원장)씨 등이 발령났다. 정보기반심의관 아래 △초고속망기획과장에는 신영수(한국무선국관리사업단 이사장 역임) △초고속망구축과장은 최명선(충북체신청장, 한국정보통신산업협회 부회장 역임, 현 KAIST 교수) △정보보호과장은 박정열(현 특허청 정보기획국장)씨 등이 전보됐다.
이들 중 노준형 과장과 유영환 과장은 등은 정통부 차관을 거쳐 장관까지 지냈다.
정통부에 정보화기획실이 신설됨에 따라 정통부 실·국 간 업무도 조정했다.
우선 정보통신정책실 소속이던 정보정책과는 정보통신정책국으로 확대, 개편했다. 정보통신지원국의 정보통신진흥과를 정책실로 이전해 SW 관련 산업진흥업무를 담당하기로 했다. 정보망과는 폐지하고 연구개발과는 기준기술과가 흡수하고 산업지원과를 신설했다.
기구개편에 따라 정보통신정책실의 업무도 조절했다.
정책심의관 아래 정책총괄과는 정보통신 관련 정책 종합조정을, 정보통신정책과는 정보통신 관련 새로운 정책개발을, 정보통신진흥과는 SW산업 및 정보의 유통정책 등을 각각 담당키로 했다. 기술심의관 아래 기술기획과는 정보통신 기술개발 기본정책을, 기술기준과는 정보통신 기술기준 및 표준화, 산업지원과는 정보통신산업의 진흥과 육성 등을 맡기로 했다.
당연히 신설부서인 정보화기획실의 업무도 새로 정리했다.
정보화기반심의관 아래 기획총괄과는 국가사회 정보화계획 종합조정을, 정보화제도과는 정보화를 위한 법·제도 정비와 정보문화 확산을, 정보화지원과는 분야별 정보화사업에 대한 지원업무를 담당하기로 했다. 정보기반심의관 아래 초고속망기획과는 초고속정보통신기반을 구축하기 위한 제반 정책을, 초고속망구축과는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계획 수립을, 정보보호과는 정보화에 따른 역기능 대책 수립과 정보통신망의 보안성·안전성·신뢰성 확보 대책의 수립을 각각 담당했다.
국(局)으로 격상된 정보통신지원국에서는 통신기획과와 통신업무과, 부가통신과의 3과를 두기로 했다. 통신기획과는 통신사업 발전계획의 수립을, 통신업무과는 기간통신사업지원과 육성, 그리고 부가통신과는 부가통신과 이동통신사업지원 및 육성 등의 업무를 맡기로 했다.
이후 정통부는 공무원들이 선호하는 인기 부처로 급부상했다. 신입 사무관들은 행시출신이 주류를 이뤘다. 정보화기획실 설치 과정은 암벽을 오르듯 난관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고난의 터널을 지나자 미래시대가 활짝 모습을 드러냈다. 부존자원이 부족한 한국에 정보통신강국이라는 희망의 꽃을 활짝 피운 것이다.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ICT의 꽃이었다.
이현덕기자 hd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