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이 희망이다]엔젤투자붐 되살리자

[스타트업이 희망이다]엔젤투자붐 되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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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서울시가 지원하는 창업보육센터에 입주한 스타트업 기업인 N사는 10월까지 자본금을 5억원으로 늘려 본격적으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할 계획이다. 그러나 선뜻 나서겠다는 투자자가 없어 자본금 확충에 애를 먹고 있다.

 

 스타트업기업에 창업 후 가장 어려운 점은 운영자금 확보다. 은행은 대출심사 과정에서 담보나 높은 신용등급을 요구하기 때문에 창업기업에는 문턱이 높다. 벤처캐피털이 대안일 수 있지만 창업부터 기업공개까지 일반적으로 10년 이상 걸리는 반면에 일반적인 벤처펀드의 운용기간은 5∼7년이어서 민간 벤처캐피털은 창업기업을 기피한다.

 스타트업기업에 가장 적절한 투자자는 엔젤(angel)이다. 엔젤이란 창업 초기에 기업에 필요한 자금을 수혈해주는 개인투자자를 말한다. 스타트업이 아이디어와 기술력만으로 성공하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신생기업을 성장시키려면 투자와 컨설팅을 해주는 엔젤투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도 엔젤투자 붐은 살아나지 않고 있다. 최근 창업 붐이 다시 불고 있지만 예전 벤처붐과 달리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엔젤투자자는 찾기 힘든 상황이다.

 ◇“천사가 사라졌다‘=자본시장의 천사들이 사라지고 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엔젤 수는 빠른 속도로 감소하는 추세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2000년에 등록된 엔젤은 약 2만8000명이었지만 2009년에는 1243명으로 급감했다. 9년 새 23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 것이다.

 엔젤 투자금액도 2000년 5493억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2009년 346억원으로 확 떨어졌다. 2004년 463억원까지 감소했던 투자금액은 이후 잠시 상승세를 보였으나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다시 하락세로 돌아섰다. 엔젤 투자건수 역시 2000년 1291건에서 2009년 87건으로 감소했다.

 과거 너무나 뜨겁게 달궈졌던 엔젤투자 열기가 오히려 한국에 엔젤투자가 사라진 요인이라는 분석이다. 미국에서는 성공한 사람이 엔젤투자자로 나서는 반면에 우리나라는 개인이 주식투자하는 식으로 ‘대박’을 꿈꾸며 엔젤투자자로 나선 경우가 많았다. 충분한 정보 없이 막연한 기대로 투자에 나섰다가 벤처 버블이 제거되면서 막대한 피해를 본 경험이 엔젤투자 위축으로 이어졌다.

 또 벤처붐이 붕괴된 이후 엔젤투자가 급감했지만 정부가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것도 엔젤투자가 위축된 한 이유라는 분석이다.

 한 엔젤투자자는 “정부가 내놓은 벤처 활성화대책이나 창업 활성화 대책의 초점은 대부분 해당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책 중심”이라며 “투자자에게 혜택을 주는 방안을 다양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보다 민간이 주도해야=엔젤이 사라지면서 스타트업은 지나치게 정부에 의존하고 있다. 창업보육센터, 창업자금 지원, 마케팅 자금 지원 등 정부는 다양한 자금지원책을 내놓고 있고 스타트업기업은 이 같은 자금을 지원받아 기업을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지금처럼 정부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구조로는 스타트업이 제대로 자금을 유치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정부의 돈을 받는 순간 생존감각은 무뎌진다. 정부 자금을 얻어 쓰고 빌려 쓰는 순간 기업인으로서 치열한 생존 정신이 사라진다. 그뿐만 아니라 정부 돈은 빚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보니 정부에서 빌려주는 융자금이 차츰 쌓이게 된다. 이것이 결국 장기적으로 기업의 유동성을 옥죈다.

 정부의 돈을 받으면 정글 같은 세상에서 생존 본능이라는 감각을 잃어버리기 싶다. 생존본능을 잃어버리면 위기에 무감각해지고 생존이 불가능한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스타트업은 스스로 정부 의존을 줄이고 기존 기업인들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특히 성공한 벤처인 스스로가 스타트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자신의 성공을 자산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런 점에서 국내 벤처환경은 아쉬운 점이 있다. 미국의 경우 벤처기업가로 성공을 이룬 사람들이 엔젤투자가로 변신해 또 다른 벤처기업을 지원하는 역할을 한다. 국내 벤처 생태계가 되살아나려면 또 다른 벤처 신화를 일궈내기 위해서 성공한 벤처인들이 전면으로 나서야 한다.

 최근 이러한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김범수 NHN 창업자, 장병균 네오위즈 창업자, 권도균 이니시스 창업자 등은 자신의 자산을 다시 후배들에게 전수하고 있는 모범적 사례다. 이들은 될 성부른 스타트업을 찾아내고 투자를 한다. 또 단순히 투자만 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멘토링도 한다. 자신의 성공 DNA를 고스란히 스타트업에 이식해 실패 가능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이 같은 문화는 다시 후발 벤처로 이어져 선순환의 벤처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제도 개선 필요=엔젤이 투자를 외면하는 이유는 투자금액 중 30%에 달했던 소득공제액이 현재 10%까지 줄어든 것도 한 원인이다. 이 또한 거의 무용지물이다. 벤처기업으로만 한정, 벤처 등록을 못 받은 초기기업에 대한 투자에는 혜택이 없다. 엔젤투자자는 초기기업에 투자를 하는 것이 관행인데 우리 현실상 초기 기업이 벤처 인정을 받기 쉽지 않다. 그나마 2012년을 끝으로 엔젤투자자 투자금액의 10%를 소득에서 공제해주는 제도가 폐지되면 국내 엔젤투자 시장은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엔젤투자가 창업 초기 기업의 자금조달과 투자유치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만큼 지원책이 나와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 28개 주에서 엔젤투자 활성화를 위해 최소 10%에서 최고 80%까지 소득공제율을 적용하고 있고 유럽 등은 엔젤투자가 벤처캐피털보다 초기 리스크가 높다는 점을 감안해 다양한 방식으로 보상·지원책을 실시하고 있다.

 미국에선 투자 손실분을 소득과 합산해 소득공제를 해준다. 또 적격 벤처기업 주식을 5년 보유한 다음 매각할 때에는 이익의 소득세 50%를 감면해준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과세이연제도까지 있다. 손실이 났을 때 일정액을 다음해로 이월해 소득에서 빼 세금을 매기거나 재투자 시 매각 전까지 과세를 하지 않는 제도다.

 한국벤처캐피털협회의 한 관계자는 “소득공제율 축소가 엔젤활성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데 이마저 사라진다면 투자시장 자체가 크게 위축될 것”이라며 “엔젤투자자에 대한 세제지원 일몰시한을 연장하고 소득공제비율을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간 회수시장 활성화 필요=엔젤의 투자를 유인하기 위해서는 투자한 자금 회수기간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창업 후 상장까지 평균 12년이 걸린다는 시간적 한계 때문에 엔젤투자자들은 투자를 주저한다. 결국 자금은 상장을 몇 년 앞둔 기업에 몰리게 되고 창업 후 평균 7년까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극도로 부진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초기 투자의 부진을 보완하기 위해 정부는 모태펀드로 지원을 강화했다. 그러나 5년 이내 회수 시장이 없는 상황에서 벤처펀드의 초기 투자는 흉내만 내는 수준에 머물렀다. 자금 공급의 확대가 문제를 해결할 순 없다.

 초기 투자의 중간 회수시장 육성을 통한 자금의 선순환이 지속가능한 문제 해결책이다. 창업 후 시장 진입단계에 접어든 기업은 갈림길에 서게 된다. 직접 시장에 뛰어들 것인지 아니면 회사를 더 큰 기업에 매각할 것인지 하는 갈림길이다.

 미국에는 스스로 시장을 개척해 성공을 지속하는 기업도 많으나, 다수 기업이 협력과 합병을 선택한다. 스타트업의 핵심역량이 기술이지 영업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나스닥 상장보다 M&A를 통한 자금 회수가 10배나 많은 이유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M&A가 10분의 1 수준이다. 따라서 정책적으로 M&A를 활성화해 투자자의 자금회수기간을 줄여주는 것도 엔젤투자가 활성화하는 한 요인이 될 것이다.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의 문제이긴 하지만 스타트업이 늘어나는 것도 엔젤투자 활성화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 엔젤투자자 입장에서는 스타트업이 늘어나면 여러 기업에 투자해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가용할 수 있는 자금이 10억원인 엔젤투자자가 투자할 회사가 10개인 경우와 100개인 경우는 많이 다르다. 투자할 회사가 적으면 한 회사당 투자금액이 많아지므로 리스크가 커지고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10개면 1억원씩 투자해야 되므로 투자에 소극적이게 된다. 결국 창업열기가 되살아나고 성공기업이 등장하면 엔젤투자도 자연스럽게 활성화될 수 있다.

 

 <박스>엔젤투자자로 나선 벤처 1세대

 지난달 28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 업체인 포도트리의 기자간담회에 김범수 전 NHN 대표가 참석했다. 포도트리는 영어어휘학습과 학습만화 시리즈 등을 앱으로 개발하는 콘텐츠 회사로 김 전 대표가 1대 주주로 참여했다. 평소 100명의 최고경영자(CEO)를 만들어내고 싶다고 공언해왔던 그가 첫 번째 CEO인 카카오톡에 이어 두 번째 CEO로 포도트리를 선택했다.

 엔젤투자 시장이 위축됐지만 최근 김범수 전 대표처럼 엔젤투자자를 자처하며 적극적으로 스타트업 후원에 나서는 성공 벤처인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들의 성공 자산 재투자로 선순환 구조의 벤처 생태계 조성 분위기가 마련되고 있다.

 국내 1세대 벤처로 네오위즈와 첫눈 등을 창업한 장병규 대표는 본엔젤스벤처를 설립하고 동영상 검색업체 엔써즈 등에 투자했다. 단순한 투자에 그치지 않고 각종 사업계약서 검토, 공동 창업자들 간 지분과 역할 조정, 임직원 평가보상 시스템 등 창업자들한테는 낯선 분야를 해결해 줬다.

 전자결제업체인 이니시스 창업자인 권도균씨도 다음 창업주인 이재웅, 이택경씨와 프라이머라는 회사를 설립, 스타트업 지원에 나섰다. 2000만~3000만원의 소액을 지원하지만 창업의 시작부터 차근차근 컨설팅을 한다.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을 엄격하게 심사하기 때문에 그 과정 자체가 학습이 된다.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한 황철주 벤처기업협회장은 초기 벤처를 도와주는 청년기업가정신재단을 설립했다. 재단 설립자금으로 정부가 50억원을 출연하고 황철주 회장이 20억원, 남민우 다산네트웍스 대표가 10억원을 선뜻 내놨다. 재단은 올해 150억원의 엔젤매칭펀드를 조성해 스타트업 기업 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회사를 넥슨에 매각하고 청년 재벌의 반열에 올랐던 허민 전 네오플 사장도 엔젤투자자로 컴백했다. 소셜커머스업체인 위메이크프라이스닷컴 등 다수의 기업에 투자하고 국내 벤처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 마련에 앞장서고 있다.

 김병기 전 지오인터랙티브 대표는 후배 벤처기업들도 지원하기 위해 애플민트홀딩스를 설립하고 스타트업 기업의 투자, 비즈니스 개발, 마케팅, 글로벌 시장 개척, 홍보, 법률자문 등 차별화된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
 <파워CEO>
<파워CEO>
[스타트업이 희망이다]엔젤투자붐 되살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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