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대지진 발생 두 달이 지나면서 한일 경제의 희비가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구매처 다변화’와 ‘신속한 물량 확보’ 그리고 ‘강해진 구매력’이라는 삼박자가 어울려 우리 기업들의 대지진 피해는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전체 부품소재 수입의 4분의 1을 일본에 의존하는 우리나라 경제 구조상 일본 대지진이 국내 산업계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했지만 오히려 지난 4월 우리나라 수출은 작년 동기 대비 26.6%나 증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 등 국내 대표 기업도 지진 여파를 최소화하면서 순항 중이다.
반면에 일본은 지진여파로 지난 3월 수출이 16개월 만에 2.2% 줄어드는 등 감소세로 반전됐다. 도요타와 소니·신에쓰·르네사스 등 일본 대표 기업의 생산 차질이 현실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산업이 대지진 여파를 최소화할 수 있었던 비결은 구매처 다변화가 큰 힘이 됐다. 세계 최대 반도체 웨이퍼 업체인 신에쓰 후쿠시마 공장 가동이 중단되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즉각 국내 웨이퍼 기업인 LG실트론의 구매 물량을 늘렸다.
보통 2개 웨이퍼 업체와 거래했던 일본이나 대만 반도체 업체들과 달리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는 3개 업체와 거래해왔으며, 대지진이 발생하자마자 신속히 대체 물량을 확보했다. 하이닉스는 일본 대지진 이후 LG실트론 구매 비중을 이전에 비해 10%포인트 높였으며 삼성전자 역시 5%포인트가량 높였다고 알려졌다. 반면에 일본과 대만의 일부 반도체 기업들은 웨이퍼 수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구매팀의 대응도 전 세계 어느 기업보다 빨랐다는 평가다. 대표적 사례는 전자 제품의 핵심 부품인 MCU 수급이다. 세계 MCU 수요량의 20%를 공급하는 르네사스의 이바라키 공장이 멈추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구매를 중심으로 비상대응팀을 구성하고 곧바로 재고 확보에 들어갔다.
대체 제품을 찾고 이에 따른 회로설계 변경 등을 통해 르네사스의 공급이 중단되더라도 생산 차질을 최소화했다. 대지진 이전에 일본 기업이 독점하다시피 한 반도체 PCB 동박은 일진머터리얼즈를 통해 국산화를 진행하는 등 국산 대체도 효과를 봤다.
반면에 일본 전자업체들은 르네사스 의존도를 극복하지 못했다. 미쓰비시는 6월부터 냉장고 생산 감축을 결정했고, 샤프와 NEC·카시오 등도 여름철 휴대폰 신제품 생산에 차질을 빚을 전망이다.
강력한 구매 능력도 대지진 피해를 최소화한 결정적 요소다. 신에쓰는 후쿠시마 공장이 멈추자 삼성전자와 하이닉스에 싱가포르와 미국 공장에서 생산한 물량을 최우선 공급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알려졌다. 우리 반도체 기업의 달라진 위상을 보여주는 방증이다.
일본의 다른 부품소재 기업들도 국내 기업 물량을 우선 배정할 정도로 국내 기업의 구매력이 확대됐다는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국내 기업들은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그때의 교훈이 오늘의 부품 다변화 정책을 계속 추진하게 된 계기”라며 “지난 두 달 동안 전사적으로 움직인 것이 피해를 최소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장동준기자 djjang@etnews.co.kr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