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으로 인한 후쿠시마 원전 가동 중단에 이어 수명을 다 한 하마오카 원전의 정지가 겹치면서 일본 열도 전체가 절전 모드에 들어갔다. 대기업 중심으로 25% 전력 절감 방침을 결의했지만 현재 공급 가능 전력량과 수요량 차이를 감안하면 여름철 대규모 정전 사태를 배제할 수 없다.
사회적 위기를 반영한 탓인지 일본은 요즘 절전형 상품이 가장 큰 이슈다. 그 중에서도 선풍기의 재조명이 가장 눈길을 끈다. 대표적 가전 양판점인 ‘야마다전기’의 4월 선풍기 판매 대수는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460%나 늘어났다. 이 추세라면 1973년 이후 매년 하락세를 보이던 일본 선풍기 판매량이 처음으로 상승곡선을 그릴 전망이다.
선풍기와 에어컨은 작동 방식이 확연히 다르다. 선풍기는 실내 공기의 흐름을 강하게 만들어 시원함을 느끼게 만든다. 온도 자체를 낮추지는 못한다. 반면 에어컨은 더운 공기를 흡수해 밖으로 뽑아내고 대신 냉매를 이용해 만든 차가운 공기를 흘려보낸다.
시원하기야 선풍기가 에어컨을 따라갈 수 없지만 대가도 매우 크다. 선풍기 전력량은 대략 45~55W 수준이다. 에어컨 전력량은 5~6평에 적당한 벽걸이형 500~600W, 20평 정도에 맞는 스탠드형이 2000W에 달한다. 전력량은 최소 10배에서 최대 20배 이상의 차이다. 누진제를 감안한 사용 요금은 무려 50배 이상이다.
물론 더위로 녹초가 될 지경에 선풍기만을 고집하긴 어렵다. 시원함과 경제성을 모두 얻으려면 선풍기와 에어컨을 함께 사용하는 방안이 바람직하다. 에어컨의 찬 공기는 바닥에 깔린다. 선풍기는 이를 실내 곳곳으로 섞이도록 만들 수 있다. 에어컨의 온도를 2∼3도 낮추는 대신 선풍기를 돌리면 더 시원해지고 전기 사용량도 눈에 띄게 절약된다.
올해 초 이상 한파가 최고조에 달했을 때 전력 사용량은 7313만㎾로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여름에는 7500만㎾를 웃돌 전망이다. 전력 예비율은 6%에 불과하다. 이 정도면 홍수로 강이 범람하기 직전의 수위와 같다. 전기는 100% 수입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국민이 자발적으로 선풍기를 찾는 모습은 우리에게 타산지석이다. 올 여름에는 선풍기의 매력에 빠져보자.
장동준 국제부 차장 dj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