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의 획기적인 진흥을 통한 신성장 동력 창출의 원천이라는 당초의 역할은 뒷전으로 밀리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또 하나의 정치적, 지역적 갈등의 원인제공자로 낙인찍히는 듯하던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의 최종 입지가 16일 공개됐다.
그러나 입지선정 평가 기준 및 절차의 공정성, 투명성 등의 쟁점화를 통해 입지선정에서 고배를 마신 후보지역들의 거센 반발 등 큰 파장이 예견되고 있어 너무나 안타까운 심정이다.
정부와 국민들 간의 불신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 및 지불해야 할 손실비용이 너무나 크다는 것을 지난 천안함 폭침사건, 광우병 사태 등을 통해 보고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과학벨트 입지선정에 있어서도 거의 동일한 문제가 재발됐다는 점에서 과학기술인으로서 답답하기 그지없다.
이 같은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최근 국민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위대한 탄생’이나 ‘나는 가수다’와 같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찾고 싶다.
이들 프로그램에서는 승자도 패자도 없다. 참가자들은 목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고, 심사자들과 청중들은 열렬한 박수와 격려를 보냄으로써 모두가 승자가 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뢰의 회복과 관용 및 격려의 미덕이다. 이를 통해 과학벨트를 더 이상 정치적, 지역적 이해관계에 따른 소모적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과학벨트 조성의 당초 목표를 성공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열렬한 지지와 격려의 대상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과학벨트 입지선정은 과학벨트의 성공을 위한 첫 걸음마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부터는 과학벨트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진정성 있는 국가적 차원의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즉, 어떻게 하면 기존의 기초과학 연구개발 주체들일 대학 및 출연(연)과 상생할 수 있는 기초과학연구원을 설립, 운용할 것인지, 초정밀 대형연구시설인 중이온가속기를 외부환경으로부터 안전하게 보호하고 활용성을 극대화할 것인지, 과학의 성공적인 산업화를 위한 비즈니스 기반을 구축할 것인지, 국내외의 우수 과학자를 유치할 수 있는 국제적 정주요건을 조성할 것인지 등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논의의 중심에 과학기술인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그뿐만 아니라 기초과학이 산업화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으며, 관련 연구자체가 실패할 수 있음을 당연하게 받아드릴 수 있는 ‘기다림’과 ‘실패에 대한 용인 및 격려’의 문화가 정착돼야 하며, 향후 어떤 정권이 들어서더라도 사업 추진의 연속성을 보장 받아야 할 것이다.
과학기술 문제가 국가적 현안으로 더욱 부각되고 있는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에서 과학기술인들의 책무는 편향되지 않은 냉철하지만 ‘따뜻한’ 전문성과 합리성을 기반으로 사회적 합의를 주도해가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과학벨트 입지선정 과정 속에서 드러난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하면서 대한민국호가 밝은 미래로 항해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인들이 그 중심에 있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과학벨트의 성공적 추진을 통해 우리나라가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기초과학 강국으로 도약하기를 희망한다.
정정훈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장 jhchung@kimm.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