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의 태동은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민동필 현 기초기술연구회 이사장 등 과학·예술·인문학 교수들은 ‘랑콩트르(Rencontre:만남)’ 모임을 갖고 세계 일류 과학자가 모여 자유롭게 토론하며 연구하는 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공간을 제안했다.
이 구상은 2006년 4월 당시 대선주자였던 이명박 서울시장에게 ‘은하수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보고됐다. 2007년 8월 이명박 후보가 한나라당 공식후보가 된 뒤 이 개념은 산업·교육 등이 더해져 보다 커지고 구체화됐다. 마침내 같은 해 11월 한나라당은 일류국가비전위원회 과학기술분야 대표 공약으로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를 확정했다.
이 대통령 당선 직후 2007년 말 인수위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TF팀이 꾸려졌고 이듬해 2월 인수위는 대통령에게 관련 보고서를 제출했다. 2008년 10월 관련부처가 과학벨트 추진지원단을 만들고 토론회, 정부출연연구소 간담회, 전문가 세미나, 공청회 등을 열어 의견을 수렴했다.
2009년 1월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추진지원단이 제출한 과학벨트 종합계획을 심의·확정했고, 곧바로 다음달 정부는 과학벨트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본격화할 것으로 보였던 과학벨트는 세종시 등 정치·지역간 이해 관계가 얽히면서 표류하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는 2010년 1월 정부 청사 세종시 이전 대신 과학벨트를 세종시에 설치하고 세종시 개념을 ‘행정중심복합도시’에서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로 바꾸는 세종시 수정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6월 세종시 수정안은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됐다.
이어 12월 과학벨트 특별법은 국회를 통과했으나 올해 초 이명박 대통령이 과학벨트 충청권 유치에 대해 “공약집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며 사실상 입지 관련 원점 검토를 시사했다. 이로 인해 충청권의 반발은 커지고 지역 간 경쟁구도는 더욱 치열해지는 우여곡절을 겪은 후 16일 마침내 대전 대덕지구로 최종 확정됐다.
<표>과학비즈니스벨트가 걸어온 길
2005년=과학·인문·예술계 학자 그룹 ‘랑콩트르’, 세계 과학자들이 모여 연구하는 과학과 예술이 결합된 공간 제안
2006년 4월=과학벨트의 모델인 ‘은하수 프로젝트(Milkyway Project)’ 이명박 서울 시장 보고
2006년 9월=사단법인 과학과 예술이 만나는 ‘은하도시 포럼’ 창립 총회
2007년 8월=이명박 후보 한나라당 공식 후보 선정
2007년 11월=한나라당 일류국가비전위원회 과학기술분과위원회 과학기술분야 대표 공약으로 ‘국제과학기업도시’ 선정
2007년 12월=한나라당 공약집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언급
2007년 12월=한나라당 충남도 대선공약집에만 과학벨트 공약 수록
2007년 12월=이명박 대통령 당선. 인수위에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TF 팀’ 설치
2008년 2월=인수위,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에게 과학벨트 보고서 제출
2008년 2월=충청권 과학벨트 이행 촉구하는 충청권 시·도지사 공동성명서 발표
2008년 7월=과학벨트 충청 유치 위한 범 충청권 서명운동 전개
2008년 10월=교과부, 지경부, 국토해양부 등 ‘과학벨트 추진지원단’ 출범
2008년 10~12월=추진단, 의견 수렴 위해 중이온가속기 관련 토론회 2회, 정부출연연구소 기관장 등 간담회 및 전문가 세미나 10회, 종합계획 공청회 2회 개최
2009년 1월=국가과학기술위원회 본회의, 과학벨트 종합계획 심의, 확정
2009년 2월=정부, 과학벨트 특별법(안) 국회에 제출
2009년 9월=정운찬 총리, 세종시 정부청사 이전 반대 표명
2010년 1월=정부, 세종시가 과학벨트 거점지구로 적합하다고 발표
2010년 6월=정부의 세종시 수정안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
2010년 12월=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특별법 국회 본회의 통과
2011년 1월=충청권 3개 시·도 공동으로 ‘과학벨트 충청권 조성협의회’ 발대식
2011년 4월7일=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위원회 출범. 본격 논의 시작.
2011년 5월 16일 =과학벨트 최종 입지 선정 발표.
관련 통계자료 다운로드 과학비즈니스벨트 추진 경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