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이하 과학벨트) 최종 입지가 대전으로 확정됐지만 의미가 퇴색됐다는 평가다. 지난 주말 일부 매체에서 대전 유력설이 보도되면서 사전에 이미 내정이 이뤄졌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 확정설은 황우여 한나라당 신임 원내대표가 지난 13일 변웅전 자유선진당 대표를 예방하는 과정에서 우회적으로 전달됐다. 아직 입지선정 위원회가 개최되지 않은 시점에 대전으로 결정됐다는 보도는 타 지역의 오해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같은 사전 확정설은 정치권으로부터 나온 만큼 과학벨트 입지선정을 둘러싼 막판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표를 의식해 사실상 충청권에 준다는 방침을 세우고 다른 지역은 들러리를 세운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사전 확정설이 불거지면서 입지를 심사한 과학벨트위원회도 요식행위로 평가절하됐다. 국책사업의 미래를 결정하는데 위원회가 꼭두각시로 전락해 정권이 시키는 대로 하고 요식적인 절차만 진행했다는 비판이다.
최종 입지로 선정된 대전도 내놓고 기뻐하지 못하고 찜찜하기는 마찬가지다.
대전은 주요 정부 출연연구기관과 과학자들이 대거 밀집해 있는 대덕연구개발특구를 바탕으로 탄탄한 연구기반을 갖추고 있어 선정이 당연하지만 사전 내정 논란으로 색이 바래졌다. 정부가 처음부터 공약사항을 그대로 이행하겠다고 발표했으면 없었을 논란을 형식상은 공모가 아니지만 실질적으로는 공모방식으로 진행하면서 지역 간 갈등만 조장한 모양새가 된 것이다.
사전 내정이 사실이 아니라면 평가결과의 정보유출 가능성도 있다. 만약 정보유출이라면 입지선정 과정에서 비공개·투명 객관·일괄발표 원칙을 누차 강조했던 정부로서는 책임론이 불거질 수 밖에 없을 전망이다. 입지 선정 과정이 결과적으로 사전에 새어나가 주무 부처인 교과부는 책임은 면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결국 대전이 과학비즈니스벨트로 선정됐지만 심사 절차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얻기 힘들고 입지선정 결과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면서 후폭풍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정부는 기존 세종시에 이은 동남권신공항 백지화와 LH본사 이전, 이번 과학벨트까지 ‘말 바꾸기’를 거듭해 심각한 위기상황에 몰린 형국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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