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LG디스플레이에 부품과 제조설비를 공급하던 A기계업체는 황당한 통보를 받았다. 앞으로 납품할 때는 무조건 LG그룹의 MRO업체인 서브원을 통해서 하라는 지시였다.
A업체 관계자는 "서브원과 거래한 후 납품가를 10~15% 더 깎이게 됐다"며 "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과 거래하던 업체들이 모두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서브원뿐만 아니라 아이마켓코리아도 삼성 거래 업체를 대상으로 비슷한 일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삼성 LG 등 대그룹의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계열사가 부품과 공장 제조설비 등 내구성 자재까지 취급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구류 등 소모품을 다룬다는 MRO 사업의 당초 취지에도 어긋나 논란이 예상된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서브원, 아이마켓코리아 등 대기업 MRO업체들은 최근 관계사의 공장 제조 유닛까지 손대면서 중소 부품ㆍ기계업체에 피해를 주고 있다.
특히 중소 부품업체들은 유통 단계가 늘어남에 따라 이중, 삼중의 납품가 후려치기에 고통받고 있다.
아이마켓코리아를 통해 삼성전자 계열사에 부품설비를 납품하는 B업체 관계자는 "고객사에 싼 가격으로 물품을 대면서 마진까지도 챙겨야 하는 대기업 MRO업체들이 우리에게 납품가를 턱없이 낮추라고 할 때가 많다"고 밝혔다.
대기업들은 겉으론 동반성장을 외치면서 자사 MRO 업체들의 `몸집 불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특히 기존의 직거래에서 중간에 MRO업체를 끼우는 것은 제품의 가격경쟁력에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LG와 삼성 계열사 구매담당자들도 MRO를 통한 부품과 설비 조달에 불만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 MRO업체들은 최근 타 업체와 공공기관 등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중소기업 영역을 침해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에 소상공인들은 대기업들의 MRO 사업 확대에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는 17일 서울청소년수련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대기업 MRO업체들의 무차별적 시장 침탈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김경배 전국소상공인단체연합회 회장은 "원가 절감이라는 미명하에 자행되는 대기업 MRO사의 시장 침탈 행위는 자사 계열사 및 협력업체 물량 밀어주기, 납품가 조작 등으로 대표된다"며 "겉으론 시장경제 원리를 내세우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편법ㆍ불법 행위"라고 주장했다.
소상공인들은 다음달부터 대한상공회의소 앞에서 항의집회를 개최하고, 9월에는 전국 소상공인 10만명이 참석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 예정이다.
■ < 용어설명 >
MRO(소모성 자재 구매대행):`유지(Maintenance)ㆍ보수(Repair)ㆍ운영(Operation)`의 영문 약자로 MRO업체는 웹페이지 등을 통해 개별 회사들이 필요로 하는 소모성 자재를 구매 관리하고 컨설팅하는 업무를 맡는다.
[매일경제 손동우 기자 / 용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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