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역할모델 될 만한 여성과학기술인 있나?](https://img.etnews.com/photonews/1105/134164_20110523135209_286_0001.jpg)
타르야 할로넨 핀란드 대통령은 여성이다. 2000년 핀란드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당선된 후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핀란드는 20명의 국무위원 중 12명이 여성이다. 여성 대통령에 장관도 절반 이상 여성이니 남녀 평등을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다.
지난 2월에 열린 유엔 여성지위위원회는 ‘교육과 과학기술에서 여성의 동등한 참여와 안전고용 및 양질의 노동으로 이행’이란 의제로 개최되었다. 세계적으로 여성과학기술인은 소수고 비주류지만 과학기술은 여성에게 좋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패널로 참석한 핀란드 대표는 “핀란드 소년들은 남성 대통령을 못 보고 커서 대통령 될 꿈도 못 꾼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여학생들에게 과학기술 전공을 많이 선택하게 하려면 역할모델(role model)이 될 만한 여성과학기술인이 많아야 한다”고 역설해 큰 호응을 받았다.
나일론을 개발한 회사로 유명한 듀폰은 2009년 이 회사 200여년 역사상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 엘렌 쿨먼을 임명했다. 그 후 듀폰은 주력사업인 화학을 버리고 농업과 태양광 바이오에너지 등 그린스마트 기업으로 거듭났다. 쿨멍은 연구개발에 집중 투자해 수많은 신제품을 만들고 이를 매출로 연결해 듀폰을 위기에서 구했다. 환경규제로 인해 듀폰은 위기에 처했지만 그녀는 이를 도약의 기회로 삼았다.
우슬라 번즈는 2009년 제록스 최초의 흑인여성 CEO가 되었다. 그녀는 편모 슬하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CEO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로 제록스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해 ‘세계 50대 여성 기업인’을 선정하면서 쿨먼을 8위, 번즈를 6위에 올려놓았다. 이들 외에도 캐럴 바츠 야후 CEO, 패드매스리 워리어 시스코 최고기술책임자(CTO) 등이 이공계 출신 여성 기업인으로 전 세계 여학생들이 꿈꾸는 역할모델이다.
미국에는 연구와 교육개혁에 큰 성과를 내는 이공계 출신 여성총장도 다수 있다. 분자생물학자 셜리 틸먼은 2001년 프린스턴대학교의 최초 여성총장이 되었다. 틸먼 총장은 여성 교수를 다수 영입했고, ‘마음과 상상력의 힘으로 더 나은 세상을 건설한다’는 취지로 대학 구성원들로부터 폭넓게 공감을 얻어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다.
생명공학회사 제네코 사장을 역임한 유전학자 수전 데스먼드-헬먼 박사는 2009년 샌프란시스코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 여성총장이 되었다. 그녀는 의학 연구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이 대학 총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인텔 등 기업으로부터 거액을 유치해 대학의 교육과 연구력 향상에 기여하였다.
2007년 펴듀대 총장으로 취임한 프랑스 코도바 박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천체물리학자다. 미국여성과학자협회 위원으로 교육과 연구개발 지원에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으며 국가과학위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연구개발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이 17% 수준으로 미국의 절반도 안 되고 여성 리더십은 더욱 열악하다. 27개 정부출연연구소 가운데 여성 기관장은 한 명도 없고, 대학교도 이공계 출신 여성 총장은 없다. 산업계도 벤처기업을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여성 전문경영인이 없는 상황에서 여학생들과 젊은 여성들이 과학기술 분야에서 자신의 역할모델을 찾는 것은 무척 어렵다.
그러나 희망은 있다. 여성과학자들이 미국 주요 대학의 총장이 된 것은 2000년 이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우리도 여성들의 리더십과 역량을 높이는 노력에 박차를 가한다면 머지않아 대학과 국공립연구소 등 공공기관에서 여성 기관장이 나오지 않을까.
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는 이를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정부도 지난 10년간 꾸준히 지원했다. 동경할 대상이 있는 자만이 꿈을 꾸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 어린 딸들을 위해서라도 역할모델이 될 만한 여성과학기술인이 많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이혜숙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이화여대 수학과 교수) hslee@wise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