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소모성자재구매대행(MRO) 사업이 중소기업 영역을 침해한다는 주장과 관련, 삼성과 LG그룹이 2차 협력사와 중소기업 대상 신규 영업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LG그룹 MRO업체 서브원은 향후 2차 협력업체와 중소기업에는 신규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25일 밝혔다. 서브원은 최근 중소기업청 주관으로 열린 양측 간 사업조정회의에서 공구유통 도매상들이 요구한 4개 사항을 모두 수용한 안이라고 설명했다.
서브원은 공구상협회가 주장하는 대로 △종전 MRO 사업 고객사에 대해 공구 유통상에 불합리하게 거래를 중단하지 않고 △매년 초 중소기업중앙회 주관으로 적정 이윤 보장을 위한 협상을 진행하며 △공급회사 변경 때는 협회에 통보하고 △2차 협력업체 이하 및 중소기업 진출을 금지한다는 내용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삼성그룹 아이마켓코리아(IMK)는 계열사와 1차 협력사 물량 이외에 신규 진출을 중단하고 공공기관에서도 손을 떼기로 했다. 삼성은 나아가 MRO 사업 관련 중소기업과의 동반성장 안도 추가로 제시했다. IMK 이사회에 중소기업중앙회 상근 부회장 등 2명을 추가로 선임해 사내외 이사를 3 대 3 동수로 구성하고 이사회 산하에 동반성장을 위한 자문기구를 설치한다는 것이 골자다. 해외 구매기업과 국내 중소기업에 다리를 나줘 해외 수출과 판로 개척도 지원하기로 했다.
일단 서브원과 IMK의 결정에 중소기업계는 환영하는 분위기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통해 “대기업이 MRO 문제와 관련해 개선된 안을 제시한 것은 좋은 결정”이라며 “이 같은 동반성장 물결이 제조업과 기타 업종까지 확산돼 대·중소기업, 소상공인이 모두 윈윈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뉴스의 눈>
삼성과 LG가 MRO 사업에서 중소기업 영역을 보호하기로 결정했다. MRO 문제로 모처럼 조성된 동반성장 분위기가 냉각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결단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대·중소기업 동반성장과 협력업체 보호를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자사 사업영역을 고수하는 정책은 정부나 중소기업들의 큰 반발을 살 수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IMK의 지난해 매출은 1조5000억원 수준이다. 정부와 공공물량을 제외한 계열사 및 1차 협력사 물량은 1조3000억원이다. 지난해 기준 2000억원가량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미 공공분야에서 많은 매출 비중을 갖고 있는 서브원은 법령상 중소기업에 해당하는 기업에는 신규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카드를 제시했다.
이번 결정으로 동반성장 분위기는 고조됐지만 문제점도 나타날 수 있다. 1차 협력사나 그룹 계열사에 비해 인력이나 시스템이 부족하지만 대형 MRO를 통해 원가 경쟁력을 갖추기 원하는 중소기업들은 MRO 이용을 원천적으로 차단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MRO의 최대 장점인 공동구매에 따른 비용절감과 구매 대행을 통한 편리성을 누릴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중소 유통업체의 이윤 확보도 중요하지만 중소 제조업체의 원가경쟁력 확보도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MRO와 사업영역이 겹치는 중소기업은 보호할 수 있겠지만, 그 반대로 MRO를 통해 값싼 가격으로 물품을 공급받고, 회사 경쟁력을 확보하려던 중소기업들은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동안 삼성·LG 이외 대기업들도 MRO 사업을 경쟁적으로 확대해왔다. 나머지 중소 MRO 사업자들이 서브원과 IMK 중소기업 진출 제한에 동참할 것인지, 사업 확장 기회로 삼을 것인지도 관심이다. 삼성과 LG 관계자는 “기존 MRO 사업에서 주도권을 갖고 있던 기업들만 사업영역을 축소하고 다른 MRO 사업자들은 영역을 확대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옳지 않다”며 우려를 표시했다.
홍기범 kbhong@etnews.co.kr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