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개도 이렇게 대우하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27일 찾은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이하 수리연) 관계자는 이 같은 말을 던졌다. 이 말 속에는 과학기술계 전체가 모욕을 당했다는 악감정을 그대로 담겨 있었다.
직원이라고 해야 고작 21명인 이 기관은 지금 심리적인 공황상태에 빠져 있다.
지난 23일 서울 경찰청은 기관장 컴퓨터 하드디스크와 기관 회계 관련 장부를 압수했다. 이 같은 일은 대덕연구단지 내 정부출연연구기관에서는 거의 전례가 없는 경우다.
청사도 없어 KT대덕2연구센터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이 기관은 정규직 21명, 비정규직 60명이 일하는 대덕연구단지 ‘달동네’다. 1년 예산이라고 해야 130억원 수준이다. 예산 규모가 가장 적어 기관평가마저 유예하고 있다. 그런 기관을 경찰이 들이닥쳐 초토화시킨 것이다.
서울경찰청은 현재 수리연 직원 일부가 서울 및 지방소재 국립대 교수 등에 연구용역 과제를 주면서 용역비 가운데 수천만~수억원을 챙긴 혐의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수리연 측은 혐의와 관련한 연구과제 용역을 발주한 사실도 없고, 개방형 연구사업을 하면서 예비 예산편성과 실제 집행예산 간 차액에서 비롯된 오해가 투서로 이어져 이 같은 사단이 난 것으로 보고 있다.
수리연 측은 특히 수사과정에서 사전 통보도 없이 서울경찰청 관계자가 들이닥쳐 서류 등을 압수해간 일에는 심한 모욕감을 나타냈다.
김정한 국가수리과학연구소장은 “소소한 문제보다는 스케일을 크게 봐야 한다”며 “한국에 오니까 과학벨트 등 정부가 투자는 많이 하는데, 아쉽게도 가장 핵심인 ‘사람’에 대한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이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고 에둘러 말했다.
김 소장 사무실은 의자와 책상 등 집기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사무실 곳곳도 비어 있었다.
연구원들은 겉으로는 의연히 대처하려 했지만, ‘분노’가 곳곳에서 느껴졌다.
송선만 수리연 연구지원실장은 “수사 중인 상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며 말을 아끼면서 “그동안 인력선발을 제한해 비정규직이 팀장을 맡을 정도로 상황이 열악했는데, 이번 일로 괜한 연구예산이나 깎이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넋두리를 풀어놨다.
송 실장은 또 “과학벨트 내에 들어서는 기초과학연구원과 통합이야기도 흘러나와 직원들이 좌불안석인데, 답답하기 그지없다”고 하소연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출연연구기관 사이에서는 출연연구기관 거버넌스 개편에 들어가기전 수리연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내놨다.
대한수학회 서동엽 학회장은 “잘못이 있다면 당연히 처벌받아야겠지만, 감사도 아니고 정부 출연연구기관을 이런 식으로 처우하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라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출연연 관계자는 “이번 사태를 보며 한국에서의 과학기술계의 위상이 단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나름 진단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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