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제도 도입으로 그동안 이통사가 독점한 휴대폰 유통구조가 이통사와 제조사를 양대 축으로 한 경쟁구도로 탈바꿈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전국 가전유통망을 가진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 자체 유통망을 바탕으로 영업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제조사 유통점에서 구매한 휴대폰 요금의 인하폭 등 세부 가이드라인이 어떻게 정해지느냐에 따라 통신사와 제조사의 이해관계는 극명하게 엇갈릴 전망이다.
방송통신위원회의 통신요금 인하안에 블랙리스트 제도는 단말기 식별번호(IMEI) 관리제도 개선을 통해 IMEI 미등록 단말기도 통화를 허용해 휴대폰 유통 방식을 다변화하는 것이다. 각종 판매 장려금, 단말기 보조금 등으로 고가 요금제를 가입시키는 행태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다.
시장의 전망은 엇갈린다. 그동안 이통사의 약정 계약에 질려 있던 소비자들이 제조사로부터 직접 구매하는 방식으로 대거 이동할 것이라는 분석과 이통사의 각종 판매 장려금으로 출고가보다 턱없이 싼 가격에 구매하던 인식을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동시에 제기된다.
블랙리스트 방식이 활성화되면 제조사가 직접 운영하는 판매점과 하이마트 등 가전 양판점의 단말기 판매량이 급증할 전망이다. 또 이통사 대리점, 개인이 운영하는 판매점을 통한 판매량이 줄면서 대리점·판매점의 통폐합도 가속화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통사의 움직임이 변수다. 휴대폰 단말기 가격 할인폭과 밀접하게 연관된 최근의 스마트폰 요금제에서 벗어나 단말기 구매방식에 상관없는 합리적인 요금제 상품 없이는 사실상 블랙리스트 방식은 유명무실하기 때문이다.
방통위는 “중고단말기 등 이통사를 통하지 않고 구매하는 단말기도 차별 없이 적정한 요금할인을 받을 수 있는 요금제 출시를 유도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통사가 자사의 유통 기득권을 내놓는 상품을 스스로 출시하는 것은 기대하기 쉽지 않다.
한 제조사 관계자는 “일본에서도 오래 전부터 블랙리스트 방식 도입 추진이 있어왔지만 요금제 상품 등이 적절히 마련되지 않아 소비자가 외면해왔다”며 “블랙리스트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얼마나 이통사가 가진 기득권을 가져오느냐에 따라 효과가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삼성전자·LG전자 등을 제외한 국내 제조사와 외산 업체들은 자체 유통망 확보가 쉽지 않은데다 그동안 이통사의 ‘배려’를 받으며 단말기를 공급해왔다. 특히 자사 전용 모델의 경우 이통사가 재고를 감내하고 공급량을 늘려주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요금제와 출고가 인하 등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 없이 블랙리스트 방식을 도입해도 지금의 유통방식에서 큰 변화를 가져오기 힘들 수 있다.
황태호기자 thhw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