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갈림길에 놓여있다.
전체 반도체 시장의 70%를 차지하는 시스템반도체 시장을 둘러싸고 전통적인 강자 미국과 대만·중국의 신흥 세력들이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치열한 몸부림을 치고 있다. 혁신에 혁신을 거듭하고 다른 기업과는 인수합병(M&A)과 연합작전 등을 펼치며 몸집을 키우고도 있다.
한국 시스템반도체 점유율은 고작 3%. 삼성전자가 올해 시스템반도체로 10조원의 매출을 기대하며 돋보이는 성장을 보이고 있을 뿐 매출 1000억원을 넘긴 회사도 찾기 힘들 정도다. 특히, 지난해 대표기업들의 부진 탓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팹리스는 고작 하나에 불과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시스템반도체 중요성에 대한 인식은 이미 높아졌다. 그러나 주변을 둘러보면 인력, 투자 등 무엇 하나 호락호락한 것이 없다.
시스템반도체 산업을 부흥으로 이끌 방법을 찾기 위해 전자신문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이 전문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그간의 역사를 짚고 앞으로 가야할 길를 찾는 한편,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결속력을 다지는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다. 지난 2일 대전 KAIST에 모인 전문가들은 장시간에 걸친 토론회에서 문제를 진단하는 원인을 공유했다. 이어 만찬까지 함께 하며 각자의 고민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토론회에는 한국 시스템반도체산업을 이끌고 있는 팹리스·파운드리 대표들이 나와 심도 있게 토론했다. ‘분야별 전문기업을 만들자’ ‘아키텍처 디자이너를 키우자’ 등이 대안으로 제시됐다.
◆참석자
유수근 지식경제부 정보통신산업정책관
경종민 KAIST 교수
박용인 동부하이텍 사장
김광현 삼성전자 부사장
한대근 실리콘웍스 사장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사장
김달수 티엘아이 사장
사회=김정호 KAIST 교수
◇사회(김정호 KAIST 교수)=그동안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각계가 열심히 노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글로벌 팹리스 순위를 보니 한국 회사는 없었다. 대만 회사가 6개, 중국이 2개가 톱 순위에 올라있었다. 대만의 성공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박용인 동부하이텍 사장=대만의 주요 팹리스 회사들과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이 많다. 가장 큰 차이점은 아무리 작게 하더라도 세계를 보고 사업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큰 시스템회사가 국내에 있다 보니, 국내 기업을 바라보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대만은 그런 기업이 없어서인지 세계시장을 보고 판을 크게 그린다. 시작 단계부터 다르다. 대만은 어느 한 고객에 얽매이지 않으며 고객 수요에 크게 흔들리지 않고 성장한다. 하지만 국내는 어느 한두 고객에 의존하다 보니까 부침이 크다. 또 대만 기업들은 처음 비즈니스를 시작할 때 아예 새로운 사업모델을 들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미디어텍을 예로 들면, 기능을 통합한 칩을 들고 나오는 게 아니라 솔루션 모델을 내놨다. 휴대폰 회사들은 미디어텍 칩이 장착돼 모든 기능이 다 들어간 솔루션만 있으면 휴대폰을 만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세 번째 요인은 핵심 인력이다. 미국 모든 반도체 회사에는 중국계 인력들이 많다. 그들이 중국으로, 대만으로 돌아가 창업하거나 창업된 회사 핵심인력으로 큰다. 고객들을 만나면 동창회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미국에서 이미 산업을 이끌어 가던 사람들이 대만에 와서 조화를 이룬다. 시스템반도체 산업도 서구에서 아시아로 이동하고 있다. 기술뿐 아니라 사람도 이동하는 것이다. 또 서로 시너지를 내기 위해 M&A를 자유롭게 한다. 실리를 주로 챙기다 보니 경영권을 욕심내지 않는다. 그래서 회사끼리 연합해서도 잘 운영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도(파운드리)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대만은 생태계가 잘 발달되어 있다. 특히, 파운드리 산업이 큰 힘이 된다. 벤처 인큐베이션이나 서포트가 잘 이뤄지고 있다.
◇허염 실리콘마이터스 사장=대만은 시스템반도체 산업에 내공이 높다. 우리는 반도체에 뛰어든 후 메모리에 올인했다.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아니다. 대만은 파운드리부터 시작했다. TSMC, UMC 등 미국 중심 팹리스가 크니까 성장 여건이 된 것이다. 대만이 좋은 점은 기본적으로 컬처가 작은 회사가 큰 회사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텍이 처음부터 지금의 규모였던 것은 아니다. 또, 주기판이 칩세트화되어갈 때 사실 많은 회사가 망했다. 비즈니스 잘한 회사들은 또 컸다. 우리가 메모리에 주력하는 만큼 그쪽은 시스템반도체에 주력한 것이다. 뛰어난 사람들이 몰리게 만든 것이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동차, 중공업 등등 크는 산업이 다양하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다양한 산업으로 퍼진다. 하지만 대만은 산업이 한정됐다. 스톡옵션도 있고 여러 가지 조건이 좋으니까 인재들이 이쪽 분야로 몰린다. 미국 벤처캐피털도 대만에 가서 투자하는 경우가 많다. 또, 기업 간 관계를 봐도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기업들이 갑을 관계가 아니라 파트너 관계다. 모리스 챙 TSMC 회장이 팹리스 사장들과 친구처럼 이야기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작은 회사가 클 수 있는 분위기다.
◇사회=대만은 서로 투자를 하기도 하고 협력하기도 하고, 공식적으로 다른 회사지만 실제로는 한 기업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래도 대만에서는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LG전자와 같은 큰 시스템 기업이 없다고 한국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또 우리도 시스템반도체 산업 육성에 대한 의지가 높았다. 그럼에도 성과가 미미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경종민 KAIST 교수=반도체 세계시장에서 ‘힘이 있다’고 하는 뜻은 얼마나 많은 기술영역을 커버하느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만큼 분야가 넓기 때문이다. 디지털·아날로그·시스템영역 등 다양한 영역이 있는데 분야마다 전문으로 하는 기업들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 분냐 간에 적절한 오버랩이 있으면서 시장을 커버해줘야 한다. 그런 부분이 대만에 비해 취약하다. 정부 주도의 발전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동네축구 하는 것을 보면 사람들이 우르르 공을 따라 다니지만 실제로 공을 차보지는 못하지 않은가. 산업도 학계도 마찬가지다. 대학은 한 분야가 인기를 끌면 너나할 것 없이 그 분야에 몰려든다. 시간이 지나고 나야 이러면 안 된다고 깨닫는다. 대학마다, 기업마다 각 분야 전문성이 있어야 한다. 연구기관도 관련 부처의 장관이 바뀌면 부서가 바뀌는 일도 흔하다. 연구 책임자가 비즈니스를 하지 못하면 살아남지 못한다. 전문성 확보차원에서 보면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수근 지식경제부 정보통신산업정책관=우리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취약한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을 하고 있다. 똑 부러지는 한 가지 이유가 있으면 그에 대한 답을 찾으면 되겠지만 여러 가지 복합적인 문제가 얽혀 있는 것 같다. 대만과 비교하면, 우리가 이 산업에 발을 늦게 들여놓은 것이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대만은 PC중심 산업을 키우면서 PC 분야 시스템반도체를 먼저 시작했다. 그 후 산업의 변화에 따라 모바일, 그다음 디스플레이 순으로 전문영역을 키워갔다. 우리도 이제부터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인력이나 자금 등 문제가 겹쳐 있지만 잘 풀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광현 삼성전자 부사장=시스템반도체에는 종류가 많다. 시스템온칩(SoC), 아날로그, 컴포넌트 타입 등이 있다. 컴포넌트 타입은 우리가 경쟁력 있다. SoC는 다소 떨어진다. SoC 하는 회사 들을 보면 칩 설계뿐만이 아니라 솔루션이 있어야 하는데, 우리는 하드웨어 설계만 했다. 그러니 번번이 실패하고 그런 쪽에서 시행착오를 거쳤다. 소프트웨어나 솔루션이 필요하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 SoC 분야에서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달수 티엘아이 사장=우리나라 시스템반도체 산업은 1990년대 IMF를 전후해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15년 정도의 경력이 있다. 15년 전 당시 주력은 메모리였다. 역사가 짧아 커다란 회사로 키울 수 있는 경영자 자질도 부족했고, 실력도 사실 좋지 못했다. 생태계도 힘들었다. 이것이 내적인 문제라고 하면 외적인 문제를 비교해 보자. 대만 톱 6개 중 2개 회사가 티엘아이가 주력하는 디스플레이 분야다. 대만 디스플레이 산업을 보면, 한국보다 수준이 낮다. 다시 말해 시스템반도체 톱 30에 들 수 있는 우리가 문화적 환경은 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시스템반도체 실력이 없어서일까. 이 분야 외국계 회사들 다 물러난 것을 보면 실력이 있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30위 안에 못 든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대만은 기업 간 관계도 좋고, 세트와 시스템반도체끼리도 키워주려고 한다. 우리는 서플라이어를 3~4개 나누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좋게 말하면 안정된 수급을 위한 것이고, 안 좋게 보면 컨트롤 권한을 세트가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부품회사가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는 것은 힘들다. 최근 우리나라도 조금씩 바뀌고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시간이 걸린다. 앞으로 좋게 변할 수 있는 시기가 올 것이다.
◇한대근 실리콘웍스 사장=IDEC, 시스템 IC 2010 등이 국내 산업에 힘이 많이 됐다. 현재 수준을 보면, 외국 그동안 업체들이 독점한 것을 국산화한 정도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좀 더 크고 복잡한 SoC에 대한 것은 아직 많이 부족하지 않나 생각한다. 예를 들면, 대만에 엠스타라는 회사가 있다. 갑자기 떠오른 팹리스다. 엠스타는 TI에서 그 분야 사업을 접으면서 인력 수급에 도움을 많이 받았다. 차이나 계열이 엠스타에 몰린 것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의 디지털TV 솔루션보다는 못할 수 있지만 가격이 3분의 1 수준이니까 60% 이상이 그 칩을 쓴다. 우리 팹리스가 그런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더 깊게 들여다보면, 독자적으로 해내기 어려운 제품군들이 많다. 특히 소프트웨어나 솔루션이 필요한 제품들이 많다. LG반도체 연구원으로 재직 시절, 마이콤 개발했다. 당시 너무 고생해서 소프트웨어에 들어가는 반도체 비즈니스는 절대 안 하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다. 실리콘웍스가 주력하는 분야는 소프트웨어가 안 들어간다고 생각했는데, 결국은 소프트웨어 능력을 키워야 하는 시점이 됐다. 지금 정도의 수준에 머무르지 않으려면 SoC 분야에 상당한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러려면 전체를 내려다보며 IP를 재구성할 수 있는 아키텍처 디자이너가 필요하다. 개발 측면에서 보면 큰 문제다. 이를 해결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사회= 팹리스 기업들이 1000억원 벽을 넘는 것을 힘들어 한다. 현시점에서 보면 유일한 것이 실리콘웍스다. 왜 1000억원 넘기는 것도 힘들까, 1조원 회사는 어떻게 하면 나올 수 있겠는가.
◇한대근=1000억원을 넘었던 회사는 몇 개 있었다. 하지만 유지하기 힘든 것 같다. 제품 하나만으로는 일시적으로 1000억원은 넘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는 지속성을 갖기가 어렵다. 포트폴리오를 갖춰가는 것이 중요하다. 조 단위의 팹리스라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다. 실리콘웍스도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단순 부품을 가지고는 1조원 기업은 어렵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러려면 복합 SoC가 필요하다. 인력이나 환경도 따라줘야 한다. SoC는 파운드리 한번 맡기는 데 10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우선 융·복합 기술에 눈을 돌려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팹리스 수준이 대규모의 SoC보다는 중소 규모, 디스크리트 제품 위주 단일 기능 갖는 제품인 것 같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3~4년 후를 보고라도 학계에서도 무엇인가 하나씩 키워나간 후 조각조각 맞춰 나가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과제들을 정부에서 조직적으로 운영해 한 테마를 만들어가면 산학연도 움직인다. 그런 과정 통해서 어느 정도 가능성 있다고 판단되면 기업에서 사업화를 진행한다. 그 사이 인력도 클 수 있다. 통합아키텍처에 대한 연구와 교육이 진행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을 하나의 회사가 하기에는 벅차다.
◇김달수=2000억원 넘지 못하고 매출이 다시 줄어드는 회사들은 문화적인 이유가 있었다고 본다. 잘한다고 키우기 보다는 경쟁구조를 만들어서 규모를 줄이는 문화다. 실리콘웍스도 내부 역량으로 보면 1000억원이 넘었어도 진작 넘었어야 한다. 이제 조금 좋은 분위기 형성돼서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매출이 3000억원 정도는 돼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비즈니스를 할 수 있다. 웨이퍼 수급이나 규모 면에서 그렇다. 조금만 신경쓰면 10개 이상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한 제품, 다시 말해 컴포넌트나 조금 덜 복잡한 SoC 분야에서도 3000억원 클럽 아이템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퀄컴과 브로드컴과 같은 플레이어를 만들기 위한 것이라면 무엇보다 인력양성에 가장 초점을 맞춰야 한다. 1조원 매출을 하기 위해서는 토양이 갖춰져야 한다. 한 가지 문제는 아니다. 문화, 새로운 시장을 리딩할 수 있는 능력, 도와줄 수 있는 마음가짐 등 모든 분야에서 노력해야 하는 시점이다.
◇사회=어떻게 해야 퀄컴 같은 기업들이 나오겠나.
◇김광현=결국 성장전략인데,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분야가 커져서 그 분야에 주력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다. 또 하나는 한 기업이 몸집을 키워서 다른 분야 기업들을 합치는 방법이 있다. 대형 팹리스들을 보면 확실한 성장전략이 있다. 한 분야 시장규모가 작으니까 분야를 넓혀간다. 미디어텍도 시디롬에 경쟁력이 있다가 모뎀 사업에 뛰어들었다. 모뎀이 성장하자 DTV 분야에도 진출했다. 영국의 CSR를 보자. 블루투스 칩 회사다. 최근 서프, 조란 등을 합병해서 몸집을 키웠다. 그렇게 하려면 대규모 투자가 필요하다. 성장전략을 제대로 못 세우거나 역량이 안돼 퇴출된 회사도 상당히 많다. 성장을 위해서는 거기에 맞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또, 실현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진행되어야 한다. 그에 맞는 토양도 조성되어야 한다. 미디어텍 예를 들면, 미디어텍 모뎀이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라고 들었다. ITRI라는 곳에서 모뎀 인력이 10년 이상 인큐베이팅이 돼서 미디어텍으로 갔다고 했다.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좋은 모델이다. 모뎀이 클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니, 그 분야 사람들을 키워서 보내주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투자가 활발할 수 있게끔 금융권도 시스템반도체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고, 인력도 있어야 한다. 단기간 대규모 인력이 필요하니까 인도나 중국, 베트남에서 인력을 찾아볼 필요도 있다. 해외로 갈 필요도 있다.
◇허염=팹리스 회사 중에 옴니비전이라고 있다. 규모는 1조원이 넘는다. 사실 우리 기업들도 옴니비전이 주력하는 이미지센서를 많이 했다. 우리나라는 왜 안될까. 1조원을 하려면 원천적인 것을 갖고 있어야 한다. 실력이 너무 우수하거나, 실력이 없으면 비즈니스 모델이 특이하거나 해야 한다. 미디어텍도 2G에서는 컸지만, 3G 개발이 잘 안돼서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매출이 줄어들고 있다. 중국의 스프레드트럼에 밀린다는 분석도 있다. 그저 그런 실력가지고는 캡티브 마켓 없이는 안 된다. 옴니비전은 어떻게 했나. 4억~5억달러 매출을 하다가 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나올 만큼 힘들 때가 있었다. 하지만, 후면조사형(BSI) CIS라는 아주 어려운 기술을 상용화했다. 이것을 TSMC랑 공동으로 개발해서 해결했다. 최근에는 고해상도 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1조원 매출을 하려면 남이 갖지 못하는 것을 가져야 한다. 남보다 엄청 싸게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 분명한 차별없이 1조원은 공염불이다.
◇박용인=시스템반도체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사업이다. 메모리는 규격이 정해져 있어서 성능을 맞출 수 있다. 시스템반도체는 커스텀IC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정합이 안되면 아무리 싸게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쓸모가 없다. 시스템에 들어가서 검증이 돼야 하니까 시간도 많이 걸린다. 과거에 비해 본질을 알아가고 인내를 구하다보니까, 좋은 제품들이 하나씩 나타난다. 그래서 미래가 밝다. 매출 보는 경우도 있는데, 시스템IC는 매출을 중요시하는 것도 있지만 이익률도 상당히 중요하다.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특히 그렇다. 큰 SoC도 있지만 아날로그 반도체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다. 아날로그 반도체는 실력만 있으면 서너명이 회사를 차릴 수 있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분야도 다양하다. 시스템반도체처럼 한 두 회사가 독점할 수 없다. 수천 개 회사들이 해야 하니까, 우리가 그런 회사들이 됐으면 한다.
◇유수근=왜 성장 못하는가라는 질문으로 해석하겠다. 처음에는 야심차게 들어갔다가, 어느 정도의 성공이 되고, 운영이 되는 형태가 되면, 시장에 따라 움직여진다. 하지만 거기까지 대부분 못 간다. 안정적인 운영 유지하면서 연구개발(R&D)할 수 있으면 위험이 와도 성장할 수 있는데, 거기까지 못 간다. 최첨단 SoC가 아니라도, 작은 시장이라도 차근차근 밟아가도 된다. 소량 다품종 시장도 들어가서 회사를 탄탄히 하는 것도 중요할 텐데 아쉽다.
◇허염=DTV 분야에서 급성장하는 엠스타라는 기업이 대만에 있다. 사실상 DTV는 우리가 일궈놓은 시장이다. 그런데, 삼성과 LG는 인하우스 칩만 개발하고 있다. 개발해서 자사의 TV에만 쓴다는 뜻이다. 삼성 DTV 칩은 TV 비즈니스 파트에서 개발하는 것으로 안다. 반도체사업부는 파운드리만 제공한다. LG도 TV 개발파트에서 한다. 이 좋은 기술을 사업화하지 않은 것은 좋은 기술을 사장하는 것과 같다. 국가적인 차원에서도 손해다. 오픈마켓에서 이 칩을 팔면 우리가 시장을 휘어잡을 수 있다.
◇사회=학교에서는 어떤 학생들을 길러내야 할까. 교과목, 교육방법론 등에 대해 토론해 보자.
◇경종민=교육은 집으로 치면 대가족에서 잘 이뤄질 수 있다. 강의실에서 수업 듣고 실험실에서 실험하는 짜여진 교육은 한계가 있다. 아이디어를 소프트웨어로 구현해 보고 전체 돌아가는지 주변에서 조언을 받고 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다양하게 길을 열어주면, 많은 사람들이 서로가 인터랙션을 하면서 배우게 된다. 칩은 작지만, 경쟁력 있는 것이 나오려면 서로 다른 기술 분야 사람들이 모여서 효율적으로, 즉시 서로 인터랙션할 수 있도록 효과가 있어야 한다. 서로 이야기하기 전에 소프트 프로토타입 안에 자기 아이디어 넣어서 공유하고 그럴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유수근= IT와 다른 산업의 융합을 지경부에서 가장 크게 본다. 주력산업에는 경쟁력이 되고 IT에서는 신시장이 된다. 그쪽에서도 인력에서 관심이 많아 준비하고 있다. 다들 고급인력은 부족하다고 하는데 문제가 있긴 있다. 또, 학생들은 열심히 해도 자리가 없다고 하고, 기업들은 사람이 없다고 한다. 기업은 대학에서 뭘 배웠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학부 교육 전공이 50% 밖에 안되니까 전공을 잘 모른다. 그래서 못 배웠다고 하는 것 같다. 기업 입자에서 보면 뭔가 학생들이 대학에서 잘 못 배웠다고 하면서도 어떤 과목을 어떻게 바꿨으면 좋겠다고 명확하게 이야기하지 않는다.
◇박용인=인력 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통계를 내봤다. 1~2년 사이 많은 사람들이 퇴사를 한다. 학교 교육이 방향이 없다. 학자를 육성하겠다는 것인지 사업을 하라는 것인지 되짚어 봐야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인턴이 의무화되어 있는데, 인턴 끝에 인터뷰해서 채용할지 말지를 고민한다. 산학이 장학금 지원이 아니라 내가 이 공부를 왜 하는지, 이 공부를 해서 어떻게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미국의 톱 10안에 드는 전자과 학교에서 대학원생을 뽑는다. 미국 시민이 몇 % 지원할 것으로 보는가. 답은 0이다. 미국은 어떻게 하면 교육받은 외국인이 미국에 머무르게 할까로 정책이 바뀌었다. 또 하나는, 세계 1위의 특정 분야 설계를 하는 학교나 과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 특화된 학교가 생기면, 세계적으로 인력이 오고 순환작용도 일어난다. 양적, 외형적인 것만 했지만 특화되고 전문화된 분야가 많아야 한다. 학계에서 산업계와 달리 새로운 기술만 추구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 논문을 내기 위해 공부하다 보니까 산업과 멀리 간다.
◇허염=우선 학생 숫자가 확보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절대적으로 한 분야를 키워야 한다면 그 분야 전공하는 교수 숫자를 절대적으로 늘려야 한다. 교수가 많아야 좋은 학생이 많다. 두 번째, 대학이라면 교수들에게 재량권을 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스탠퍼드는 석사 논문 쓰지 말라고 한다. MIT는 석사를 박사의 한 스텝으로 본다. 다시 말해 각 학교마다 재량권이 있다는 이야기다. 일을 해도 성취감을 느끼면 안 힘들다. 방법을 바꿀 수 있도록 재량권이 주어지지 않으면 힘들지 않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기업에서도 인력에 대한 태도를 바꿔야 한다. 고등학교 나와서 레이아웃을 해도 1억원을 벌 수 있어야 한다. 회사에는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인력은 10%가 한다. 다 이 역할만 하면 회사가 돌아가질 않는다.
◇경종민=우수인력이 너무 대기업만 가는 것도 문제다. 정부 역할이 필요하다. 중소기업 경우에는 핵심인력이라고 정의내린 사람은 국가에서 지원해주면 안되나. KAIST를 처음 만들었을 때 병역면제 등 파격적인 혜택이 많았다. 이윤 나누는 동반성장 이야기까지 나오는 마당 아닌가. 아예 팀까지 빼가는 경우가 있다던데, 중소기업에 이적료 내는 방법도 생각해 봐야 한다.
◇유수근=학생들도 직업선택 자유가 있어, 누구 어디 가라 할 수는 없다. 우수한 학생들은 장학금을 주고 데려와 봐야 3~4년 후에 나가려고 하니까, 중소기업들은 수준을 낮춘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한이음 사업이라고 있는데, 학생들과 산업체를 맺어주고 교육받도록 하는 사업이다. 이 사업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결이 되어 왔던 학생들은 이직률이 낮다고 한다.
◇김광현=한국 시스템반도체 인력 숫자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특히, 아날로그 엔지니어는 굉장히 부족하다. SoC에는 아날로그가 항상 들어가는데, 디지털만으로는 안된다. 한국이 세계적으로 잘하는 분야가 있기도 하지만, 아날로그 분야에서는 경쟁력이 다소 낮은 것 같다. 외국 반도체 회사를 보면 공학박사 출신의 매니저와 마케팅 인력도 많다. 우리는 공학을 가르치고 비즈니스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은 것 같다. 기업가 정신을 가르치는 포럼이 있었으면 좋겠다. 또, 해외 대학에서는 게시판에 비즈니스를 같이 해보자는 글이 많이 붙는다고 한다. 학교 전체가 벤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분위기가 조성됐으면 좋겠다.
◇김달수=교수들한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교수부터 행복해 졌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런 마음이 학생들에게 전달되어야 학생들도 반도체 개발하는 데 행복을 느낀다. 또, 학생들에게 회사를 소개도 해주고, 자꾸 산업에 대해 홍보도 해줘야 한다. 자기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 늘어나야 한다. 매칭펀드를 만들어 장학금을 주고 인재를 키우는 것도 좋겠다. 정부와 팹리스가 매칭펀드를 만들어서 아예 석사과정부터 교육을 시키고 기업에 데려오는 방식을 말한다. 그 매칭펀드로 한명이 오면 다음 후배가 또 이어지는 것도 중요하다. 일치감이 조성되는 것도 기업에 좋다. 회사에서 실제로 문제를 풀고 혁신적인 일을 하는 사람은 10~20%다. 지방에 있는 학생들도 장학금을 줘서 데려와야 한다.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학생들에게도 지원을 해서 데려와야 하나 고민 중이다.
◇유수근=소프트웨어와 시스템반도체 산업이 잘되어야 주력 산업 경쟁력도 생긴다. IT 시장도 더불어 커진다. 지금 산업 발전전략 준비를 하고 있다. 제일 큰 부분이 인력양성이 될 것이다.
◇사회=인력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가 심각성을 느끼고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심도 깊은 토론회를 자주 열어 산업의 발전방향을 함께 찾아갈 수 있도록 하겠다.
정리=문보경기자 okmu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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