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업 분포는 허리기업군이 허약한 첨탑형 구조라고 표현된다. 2007년 기준 전체 제조업체 중 중견기업 비중은 독일의 8.2%, 일본의 1.1%에 못 미치는 0.2%에 불과하다. 고용과 성장에서 중핵적 역할을 담당하는 중견기업의 부재는 경제 활력 측면에서 근본적 문제이다. 사람에게 날씬한 허리는 건강의 상징이 될 수도 있겠지만, 우리 산업에서 날씬한 허리구조는 기업 성장 생태계의 역동성이 저하되고 있음을 알리는 경고등이다.
사실 그간 중견기업의 성장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부족했다. 다양한 중소기업 지원 프로그램이 구비된 것과 달리 중견기업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또한, 중소기업 졸업시 발생하는 대기업 수준의 규제와 급격한 조세·금융 부담은 중견기업으로 성장하기 보다는 중소기업에 안주케 하는 성장의 턱으로 작용해왔다. 무엇보다 중견기업이 어떤 기업인지에 대한 명확한 정의조차 없었다.
이에 정부는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경우 발생하는 ‘지원 급감과 규제 급증’의 비대칭적인 제도의 모순을 해소하고 기업이 원활히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지난 해부터 관계부처 합동으로 세계적 전문 중견기업 육성전략을 수립, 추진하고 있다.
먼저, 산업발전법을 개정하여 중견기업에 대한 법적 정의와 지원 근거를 마련했다. 중소기업 기본법상 중소기업을 졸업한 기업 중 상호출자제한집단이 아닌 기업으로 중견기업의 범위를 명확히 했다. 혁신성과 성장역량을 갖춘 중견기업에 대한 포괄적 지원근거를 마련했다.
둘째, 중소기업 졸업에 따른 부담 완화를 위해 조세·금융 제도를 개선했다.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5년간의 부담완화기간을 두고 최저한세율과 R&D 세액공제율을 순차적으로 조정하는 슬라이딩 방식을 도입했다.
셋째, 기술력과 글로벌 경영역량을 제고하기 위해 R&D 및 해외마케팅 지원을 대폭 확충했다. 또한 올해 30개사를 시작으로 2020년까지 세계적 수준의 전문 중소·중견기업 300개를 육성하기 위한 종합 지원 프로그램인 월드 클래스 300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 전문 중견기업 육성 전략의 본격적인 추진을 통해 이제 중견기업 육성정책의 첫발을 뗐다. 앞으로도 정부는 건강한 기업 성장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기업 성장 저해요인으로 작용하는 규제와 제도를 지속적으로 발굴·개선할 계획이다.
그러나 건전한 기업 성장구조 정착을 위해선 무엇보다 기업 스스로의 관심과 노력이다. 대기업은 동반성장 문화를 확산해 중소·중견기업들이 원활히 성장하는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 눈앞의 이익에 쫓겨 갈택이어(竭澤而漁, 연못을 말려 고기를 얻는다)의 우를 범하지 말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중소·중견기업의 성장에 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중소·중견기업의 자체 노력이 중요하다. 기업 스스로 성장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현실에 안주하기 보다는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기술개발, 인재 양성, 해외 진출 등 혁신활동에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과거 10년의 장기 불황이란 최악의 조건 속에서도 막대한 기술개발 투자와 혁신노력을 통해 팬용 모터, 자동차용 모터 등 손대는 분야마다 세계 1위로 등극한 일본전산의 사례는 우리 중소·중견기업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우리 경제는 그간 삼성·LG·현대 등 대기업의 선전으로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빠른 성장을 이뤄왔다. 하지만 진정한 산업강국·무역대국으로 한 단계 더 도약하고,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기업 성장의 저변을 확대해 새로운 성장엔진 역할을 할 대표선수를 키워야 한다. 중견기업은 양질의 일자리와 새로운 소득 창출을 책임질 우리 경제의 희망이다. 이제 작지만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딛은 중견기업 육성정책, 앞으로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실행이 더욱 중요하다.
지식경제부 윤상직 제 1차관(szyoon@mke.go.kr)
-
안수민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