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어윤대 회장의 고민

 20일 오전 8시55분 KB국민은행 여의도 본점 앞마당.

 경비인력들이 줄을 선채 방어막을 친 건너편에선 노동가요와 구호소리가 터져 나왔고, 때마침 검은색 에쿠스 차량이 경비원들의 수신호에 맞춰 멈춰섰다. 문이 열리고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이 차에서 내렸다. 서른명쯤 되는 KB 노조원 쪽으로 흘깃 눈을 돌렸던 어 회장은 경비원들에 둘러싸여 13층 집무실로 통하는 전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충돌은 없었지만, 엘리베이터가 닫히기 전까지도 “어윤대는 물러가라” “왜 왔냐”라는 험악한 구호가 쏟아졌다.

 이날처럼 KB 노사가 직접 맞닥뜨린 것은 드물지만, 팽팽한 신경전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노조 측은 어윤대 회장이 정부의 메가뱅크 추진 의지에 발맞춰 우리금융지주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라며 이를 저지하겠다고 나섰다. 본점 곳곳에 붙은 대자보에서도 “어 회장은 (정부의) 메가뱅크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KB지주 측은 “전혀 정해지지 않은 일을 노조가 ‘그렇게 할 것 아니냐’는 식으로 반발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실제 어 회장도 주요 시점마다 우리금융에 대해 “입찰 안 한다” “준비가 안 됐다”는 발언을 내놓으며 당장은 뜻이 없음을 내비쳤다.

 하지만, 오는 29일 우리금융 입찰의향서 제출 시한까지 어 회장의 이 같은 의지가 유지될 것인지는 여전히 분분하다. 이미 입찰이 막힌 산은금융지주를 제외하면 KB금융과 신한금융, 하나금융지주밖에는 대안이 없다. 하나금융은 론스타 문제를 푸는데도 힘이 모자랄 지경이다.

 결국, KB금융이 입찰을 고사한다면 이번 우리금융 매각은 유효경쟁(2곳 이상 입찰) 불발로 작년 말에 이어 또 한 번 무산될 공산이 크다.

 누가 보더라도 현 정권의 실세 중 실세인 어 회장의 고민이 그래서 깊을 수밖에 없다.

 ‘해결사’로 나서자니 안팎의 반발이 거세고, 그냥 물러앉자니 리딩 뱅크로서 체면이 안서기 때문이다.

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