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퍼컴퍼니 넘쳐나는 전기공사 업계] <상>1만2000개 기업 중 절반이 페이퍼 컴퍼니

 국내 1만2000여개에 이르는 전기공사업체가 지금 비보호 좌회전 신호 앞에 서있다. 1960년대부터 지금 국가 산업의 기반이 되는 전기에너지를 가정과 산업현장에 안전하게 공급하며 IT강국의 견인차 역할을 해 온 전기공사업계가 곪아 썩고 있다. 법의 허점과 지나친 경쟁 탓에 20년 넘는 시간동안 정부가 만들어놓은 허술한 신호체계(법) 앞에 어쩔 수 없이 불법이 아닌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전기공사업계의 실상과 가야할 방향에 대해 짚어본다.

 

 국내 건설경기 침체로 인해 전기공사 수주 물량은 매년 감소하고 있지만, 전기공사업체는 해마다 늘고 있다. 2001년 2조7700억원에 달했던 한전의 발주규모가 2010년에는 2조6000억원도 못 미치고 매년 줄고 있다.

 반면에 전기공사협회 회원사 수는 2000년 9331개에서, 2011년 현재 1만1367개의 회원사가 가입해 활동 중에 있다. 공사협회 회원사로 등록하면 전국 변전·배전·가공송전·지중송전 분야 등의 국가가 발주하는 모든 전기공사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전기공사 주 발주처인 한국전력과 KT는 매년 1~2차례에 걸쳐 해당분야에 입찰 공고를 통해 약 1500개 이상의 기업을 단가계약업체로 선정한다. 선정된 업체는 계약기간 동안 해당 공사를 도맡게 된다. 보통 계약은 대부분 2년으로 하기 때문에 업계에서는 ‘철밥통’으로 불린다.

 전기공사업계는 이런 철밥통을 따내기 위해 혈안이다. 업계에서는 단가계약 수주 확률을 높이기 위해 한 사람이 여러 기업을 소유하거나 실적 등의 입찰 요건을 채우기 위한 판매용 기업이 늘고 있다.

 전기공사업체 한 대표는 “전기공사협회 회원사 중 절반이 넘는 회사가 입찰만을 위해 실체가 완벽하지 않은 비정상적인 기업들”이라며 “입찰되면 보통 2년간 사업이 보장되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차명으로 기업을 보유하거나, 실적을 사고파는 일이 많다”고 말했다.

 실제 전기공사협회 회원사 중 경기지역 회원사를 포함해 이 지역의 주소지를 두고 있는 2748개 중 439개 기업이 같은 주소지로 사업장을 신고했으며 한 주소지에 최대 6개까지 사업장으로 신고한 곳도 3곳에 달했다. 또, 같은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기업이 200곳을 넘었으며 최대 9개 기업이 같은 번호로 사업자 등록한 사실도 확인됐다.

 차명으로 사업장을 하나 더 운영하고 있는 기업인은 일반적일 일이다.

 업계 관계자는 “차명으로 기업을 운영하는 건 흔한 일이고 어느 기업인은 40개의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고 20개 이상을 운영 중인 대표도 수십 명에 이른다”며 “여러 개 기업을 가지고 입찰에도 참여하고 입찰에 필요한 기업실적을 채우기 위해 돈을 받고 판매하는 일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최근 1년간 합병으로 인해 폐업했다고 신고한 업체 수가 전국에 570건에 달했다. 이들 중 70%가 한전의 입찰공고가 있었던 지난해 10월 이전에 신고한 기업이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