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로벌 기업들은 신제품 개발속도를 높이기 위한 제품수명주기관리(PLM)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모두가 하나의 정보를 보며 손발을 맞출 수 있는 R&D’. 최근 글로벌 기업들이 ‘싱글소스오브트루스(Single Source of Truth)’라고 부르며 추진하는 PLM 시스템 혁신의 골자다. 누구든 어떤 시스템을 통해서도 ‘같은 정보’를 공유해 개발속도를 높일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이 체제의 실현이 어려운 이유는 많은 데이터들이 각기 다른 시스템에 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최근 PLM 프로젝트를 추진한 삼성전자, LG전자, 현대기아차, 현대중공업 등 국내 기업들의 고민도 바로 이 문제에서 시작되고 있어 글로벌 기업들의 프로젝트가 주는 시사점이 크다.
◇보잉·펜스케 ‘시간과의 전쟁’=항공·자동차 등 수많은 부품이 탑재되고 데이터 량이 방대한 기업들일수록 데이터 공유에 대한 고민도 크다. 보잉이 고민한 가장 큰 과제 가운데 하나도 수많은 기술 데이터들을 생성하고 이를 필요로 하는 기술자들에게 쉽게 전달하는 일이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보잉은 제품 개발을 위한 프로세스를 재정립하고 표준화 시킨 후 통합 데이터 저장소를 마련했다.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최된 ‘플래닛PTC 라이브 2011’ 행사에서 사례 발표에 나선 보잉(Boeing)의 마이클 라이트 수석 테크놀러지스트는 “프로세스를 재정립하기 위해 현재의 문제점을 정확히 정의하고, 5~15년 후를 내다보기로 했다”며 “데이터의 검색과 접근에 소모되는 시간, 부품 공급업체 및 협력업체들과의 정보 연계, 그리고 하위 기술자들에게 정보가 잘 전달되지 않는 문제 등이 최근의 가장 큰 이슈”라고 지적했다.
이에 데이터 통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통합된 기술데이터(Integrated Technical Data) 패키지’를 만들고 서비스까지 지원하도록 했다. 또 기술자들이 한 손에 노트북PC를 들고 한 손으로 장비를 잡고 일해야 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핸즈프리’ 기술도 도입했다. 특수 안경을 쓰면 화면이 뜨는 식이다.
미국 2위의 자동차 딜러 회사 펜스케(Penske)는 빠르고 정확한 경주용 자동차 개발을 위해 PTC의 윈칠을 기반으로 PLM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20만대 이상의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이 회사는 복잡한 자동차 개발 과정에서 아주 작은 설계 변경을 통해 레이스에서 승리하거나 실패할 수 있는 데다 설계 데드라인도 급박하게 돌아간다.
스티븐 피켓 펜스케 최고정보책임자(CIO)는 “매주 주말에 펄쳐지는 레이싱 경기에서 최대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각각 특화된 트랙 모양에 맞는 개발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빠른 개발 단계별 정보 공유는 물론이고 협업 효과를 높일 수 있는 PLM 시스템을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펜스케는 PLM 소프트웨어와 마이크로소프트의 SQL 서버를 통해 하나의 DB에 모든 데이터를 보관하고 각 부문이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월풀, 전 세계 정보 하나의 DB로=월풀도 분산된 데이터의 ‘공유’에 대한 고민이 적지 않았다. 이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9개의 DB를 하나로 통합해 관리하기 위한 프로젝트도 추진했다. 2008년 윈칠 PDM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22개의 엔지니어링 및 기술센터와 2200명의 개발자들의 캐드(CAD)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
납기일이 매우 중요한 기계 및 중장비를 개발하는 B2B 기업들의 고민도 적지 않다. 미국 시스템그룹도 올해 PLM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물류 전문 솔루션 및 장비를 공급하는 로지스틱스 사업부문에 설계 프로그램부터 PLM까지 바꾸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조립·엔지니어링 등 제품 개발 속도 향상에 주력하고 있다. 특히 ‘개방형 글로벌 PLM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개발자들이 서로 같은 데이터를 보면서 24시간 협업할 수 있도록 했다.
로베르토 돌치 시스템그룹 CIO는 “개념설계를 위한 다이렉트 모델링을 활용하고 3D모니터와 3D 프린터, 빠른 시제품 개발을 통해 개발 속도를 높였다”고 설명했다. 또 작업현장에서 종이 문서를 확인하는 대신 42인치 LCD 모니터를 통해 작업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해 작업효율도 높였다.
<인터뷰> 로베르토 돌치 시스템그룹 CIO
“PLM 프로젝트를 통해 제품 개발 시간을 단축하고 생산성을 향상하는 한편, 시스템 사용 편의성도 증대시키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로베르토 돌치 시스템그룹 CIO는 전자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소개했다.
시스템그룹은 타일제작 장비 및 시스템, 물류 장비 및 시스템, 광전지 등 6개의 사업부문을 가진 미국의 중견 B2B 기업이다. 올해 PLM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 이 회사는 글로벌 개발 정보 단일화와 개발속도 향상을 위해 다양한 R&D 시스템 혁신에 힘을 쏟아왔다.
개발자들의 변화관리를 고려해 캐드 솔루션 선정은 신중하게 했다. 돌치 CIO는 “강제로 캐드 프로그램을 바꿔 사용하라고 하면 심한 반발이 일어난다”며 “8명의 엔지니어에게 솔리드웍스, 오토캐드, 크리오 등 다양한 제품을 사용하도록 하고 어떤 제품에서 개발속도가 가장 빠른지 검증해 서로 눈으로 확인하게 했다”고 전했다.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온 PTC의 크리오를 표준 CAD로 정하고 지난해 3월 PTC의 크리오 1.0 베타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PDM 시스템 개선을 시작했다. 돌치 CIO는 “그 결과 제품 아이디어 스케치부터 모델링까지 약 30%의 시간이 단축됐다”고 말했다.
이어 시스템 그룹은 각 개발단계 정보공유 수준을 높이고 개발 프로젝트도 관리할 수 있도록 올 상반기 윈칠을 기반으로 PLM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내년 완료한다. 윈칠이 이기종 캐드를 관리하면서도 컨피규레이션 등에 장점이 있다고 판단한다.
돌치 CIO는 유럽, 중국, 미국, 브라질 등에 흩어진 글로벌 설계 데이터 공유를 위해 하나의 부품을 개발할 때도 모두다 연동되게 했다고 전했다. 돌치 CIO는 “전 세계 개발자들이 24시간 정보에 접근할 수 있고 이를 공유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을 조성했다”고 말했다.
라스베이거스(미국)=
유효정기자 hjyou@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