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클로즈업] 인간은 왜 위험한 자극에 끌리는가

[북스 클로즈업] 인간은 왜 위험한 자극에 끌리는가

 사람은 늘 자극을 받는다. 여자들은 텔레비전 쇼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걸그룹의 늘씬한 각선미를 보며 갑자기 다이어트를 결심한다. 그 뿐인가. 멜로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처럼 세상에 있을 법하지 않은 ‘백마 탄 왕자님’과 로맨스를 꿈꾼다.

 남자들은 꿀복근을 가진 헬스 트레이너의 몸에 자극받아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작하고 지난밤 어둠의 경로를 통해 본 야한 동영상 때문에 일을 손에 잡지 못한다. 세상에는 인간이 빠져나오기 힘들만큼 강렬하고 위험한 자극이 도처에 깔려 있다.

 현실 속의 살아 숨쉬는 인간관계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해버린 ‘텔레비전’나 남자의 성적 본능을 자극하는 ‘포르노그래피’, 여성의 환상을 충족시켜주는 ‘로맨스 드라마’, 어떤 과일보다 달콤한 ‘사탕’, 고칼로리의 ‘정크푸드’. 진짜보다 더 강렬한 매력을 지닌 이 모든 인공물은 중독과 집착 같은 인간의 과잉 행동을 유발한다. 이런 위험한 자극에서 인간은 왜 벗어나지 못할까?

 이 책의 저자 디어드리 배릿은 음식, 섹스, 영역 보호 등을 위해 진화한 인간의 본능들이 1만 년 전 사바나에서의 삶을 위한 것이었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현대 식단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기름진 음식, 설탕, 소금에 대한 간절한 욕구는 사바나 생활을 위한 것이었다. 당시 그런 물질들이 희소했고 한 조각이라도 발견하는 것이 생존을 좌우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본능은 강렬하고 진화는 더디다는 것. 인간의 본능은 점점 더 자극적인데 반해 진화는 굼뜨다. 이 충동 본능은 더 자극적으로 강렬한 모조품을 만들어 스스로 해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배릿은 이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1930년대 노벨상을 수상한 니코 틴버겐이 발견한 ‘초정상 자극’이라는 개념을 가져왔다. 초정상 자극들이 어떻게 비만, TV와 게임중독, 그리고 지난 세기의 광포한 전쟁을 일으켰는지 최초로 설명한다. 초정상 자극은 원래 실물보다 모조품이 본능을 더 강하게 자극한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뻐꾸기는 자신의 알을 뱁새의 둥지에 밀어 넣어 알을 부화시킨다. 뻐꾸기 알은 뱁새 알보다 약간 더 크고 밝지만 뱁새는 뻐꾸기 알을 알아채지 못하고 그 알을 품는다. 부화한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준다. 인간도 화려한 뻐꾸기 알에 속는 뱁새와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 바로 초정상 자극 이론의 골자다.

 이 책은 동물행동학, 진화인류학, 심리학의 성과를 아울러 인간 본능과 진화 사이의 단절을 설명하고 1930년대 이후 별다른 조명을 받지 못했던 초정상 자극 개념을 가져와 그것이 현대 사회의 섹스, 건강, 국제관계, 미디어 등에 미치는 영향을 흥미롭게 탐구한다. 그 뿐 아니라 고삐 풀린 원시 본능과 초정상 자극이 일으키는 비만, 중독, 전쟁과 같은 현대 사회 문제에 대한 해법도 제시한다.

 각각의 해결책은 구체적이고도 명쾌하다. 인간에겐 커다란 뇌가 있다. 바로 여기에서, 우리를 나쁜 길로 인도하는 본능을 거부할 수 있는 자제심이 나온다. 문명의 휘황찬란한 덫에서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는 독특한 능력이 나온다고 그는 말한다. 디어드리 배릿 지음. 김한영 옮김. 이순 펴냄. 가격 1만3800원.

허정윤기자 jyhu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