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화평법, 충분한 협의없이 제정할 법규 아니다!

[ET단상]화평법, 충분한 협의없이 제정할 법규 아니다!

 현행 화학물질 관리 법률인 ‘유해화학물질관리법’으로는 현재 유통되는 화학물질의 안전성을 파악할 수 없고 화학물질 관리가 미흡하다. 이런 이유로 환경부는 유럽연합(EU)의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Registration, Evaluation, Authorization, and Restriction of Chemicals)를 본 딴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이하 화평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화평법 제정 취지는 화학물질의 정보 등록 및 평가를 통해 전 과정 관리체계를 마련하고 국민건강 및 생태계보호와 함께 국제 화학물질 규제에 대응해 산업경쟁력 강화를 위함이라고 환경부는 밝혔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2014년부터 연간 0.5톤 이상 신규물질과 평가대상물질을 제조, 수입하는 기업은 해당 화학물질을 환경부에 등록하고 유해성 및 위해성 평가를 받아야 한다. 평가 결과에 따라 위해물질로 판정되면 기업은 해당 화학물질의 사용이 금지되거나 제한되고 대체물질 사용 등의 대체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국민 건강과 생태계 보호 및 국제적 추세에 따른 법안이지만 법안 제정 과정에 많은 문제점이 있어서 우려가 크다. 환경부가 발표한 화평법 추진 일정을 보면 지난 2월 법령 입법 예고 후 2개월간의 의견 수렴을 거쳐 올 연말까지 국회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2013년 평가대상물질 고시 후 화학물질 등록까지 1년여의 시간만 남아 기업들이 화평법을 준비하고 이행하는 데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

 화평법의 모델인 EU REACH의 경우는 1998년부터 화학물질관리제도에 대한 도입 논의를 시작해 2년간의 협의 기간과 17개월 간의 의견수렴기간, 3년 간의 영향분석 후 2005년에는 1년 간 모의 시행까지 거쳤다. 꾸준히 기술적 사항을 보완하고, 기업의 인식 제고에 힘써 2007년 6월에야 시행했다. 일본 역시 2006년 도입논의를 시작해 산업계와 환경단체의 입장을 조율하며 범부처의 검토를 거쳐서 기존의 법을 개정하는 형태로 2011년 4월에 시행했다.

  그러나 화평법은 일부 대기업·협회·중소기업 담당자의 제한적 참여로 아주 부분적인 의견만 법안 작성에 반영됐다. 입법 예고안에 대다수 산업체 및 타 부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고 성안 기간도 턱없이 짧았다. 자국 산업의 국제경쟁력 보호를 위해 선진국들은 신중한 검토와 다양한 분야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음을 볼 때, 국내도 현재의 법 추진 과정에 기업과 환경단체, 관계부처 간의 충분한 논의 및 타당성 검토 등 면밀한 분석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화학물질의 평가와 관리는 매우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민감한 사항인 만큼 환경부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심도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환경부에서 관리하는 것이 얼핏 바람직해 보일 수 도 있다. 하지만 산업계의 화학물질 활용도, 제품 안전관리, 기업 환경 및 안전성 등을 고려할 때 환경부와 더불어 지식경제부와 고용노동부 등 범부처적 차원의 공동 관리가 타당하다. 그래야만 지식경제부의 완제품 관리 노하우와 고용노동부의 근로자 건강관리 측면에서 화학물질 평가에 대한 전문적인 노하우를 통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각 부처 간 중복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환경부 단독 입법이 아닌 범정부 차원에서 법안 제정이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정봉진 수원대학교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bjjung@su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