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감찰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삼성전자에서 사전 투자심사를 거치지 않고 단독으로 자금 집행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임원이 있다. 바로 지식재산(IP)센터를 이끌고 있는 안승호 부사장이다. 각국에서 출원된 특허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삼성전자 미래를 위해서 필요한 것인지를 판단, 즉각적으로 매입할 수 있도록 특혜(?)를 부여받았다.
이 사례 하나만으로도 기업들이 글로벌 지식재산 전쟁에서 얼마나 피 말리는 싸움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라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 지식재산 정책을 총괄할 국가지식재산위원회가 여러 고비를 넘어 지난달 28일 대장정의 막을 올렸다. 1990년대 전자업계의 디지털 복제기기 생산이 본격화하면서 음악, 문화, 출판 등 문화콘텐츠 저작권단체들과의 분쟁이 촉발점이 됐다. 2000년대 들어서는 기업 간 특허소송이 줄을 잇고 국가 간 무역분쟁으로 비화됐다. 중소기업 보호와 창업 활성화를 위해서라도 지식재산 정책에 대한 총괄적 모색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지재위가 수년간의 논쟁 끝에 출범하게 된 이유다.
그럼에도 출발선에 오른 지재위는 여전히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불분명하다. ‘지식재산 창출과 보호, 활용’이라는 광범위하고 선언적인 ‘프로파간다’를 구체화하기에는 아직도 논의가 부족하고 종합적인 밑그림도 만들어지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여러 자리를 고사했지만 지재위만큼은 해보겠다며 수장을 맡은 윤종용 민간위원장을 비롯해 지재권 현장에서 피땀을 흘려본 현업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이다. 직접 느꼈던 절박함은 탁상공론이 아닌, 실질적인 성과물로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감도 낳는다.
현재 지재위 모습은 분명 윤 위원장 말처럼 정형이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첫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이다. 앞으로 민간이 원하는 거대한 물줄기 하나만 틔워준다고 해도 큰 흐름으로 다가올 것이다. ‘창의’는 결국 민간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미래정책팀=정지연차장 jyj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