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이 소모성 자재구매 대행(MRO)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로 결정하면서 전체 MRO 시장에도 메가톤급 ‘후폭풍’을 예고했다. 사업 포기에 인색한 삼성이 매각이라는 극약 처방을 내놓으면서 전체 MRO 시장에 재편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 잇따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로 MRO 사업이 갖는 순기능까지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삼성은 1일 중소기업과 동반성장, 상생협력이라는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겠다는 취지로 MRO 사업을 전담해 왔던 아이마켓코리아 지분 전량을 매각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은 삼성전자·에버랜드 등 9개 계열사가 아이마켓코리아 지분 58.7%를 가지고 있었다. 삼성 이인용 부사장은 브리핑에서 “동반성장 취지에 부응하고 비주력 사업 철수를 통한 경쟁력 강화 차원의 목적이 크다”고 설명했다.
삼성의 이번 결정은 사업 자체 경쟁력보다는 안팎의 대외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겠다는 측면이 큰 것으로 보인다. MRO 사업은 올해 초 대기업이 사업을 과점하면서 중소기업과 상생에 배치된다며 곤혹을 치렀으며 대표적으로 대기업 계열사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이 때문에 90년대 중반 MRO 사업에 진출한 이후 기업을 공개할 정도로 순탄하게 사업을 벌였던 삼성이 잇단 여론 악재로 올해 그룹 전체 이미지에 적잖은 타격을 받았다. 이번 조치는 결과적으로 안팎의 사회 여론에 밀린 고육책으로 보인다.
특히 아이마켓코리아는 국내 MRO 점유율 2위라는 측면에서 시장에 직격탄을 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대기업 계열 MRO 사업은 사업 조정이나 매각과 같은 후속 조치가 이어질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당장 예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대기업 사업 포기에 따른 전문 기업의 부상이다. 국내 MRO 시장은 삼성을 포함해 LG·포스코·KT 등 대기업 계열 회사가 주도해 왔다. 삼성이 MRO 사업에서 철수하면서 다른 대기업 계열 MRO 회사도 입장 변화가 잇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MRO 사업 모델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시장 구도는 대기업에서 전문기업 중심으로 ‘180도’로 바뀔 전망이다.
이미 한화그룹은 지난 6월 말 MRO 사업에서 손을 떼기로 방침을 정하고 지난달 중순까지 관련 사업을 정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화는 2001년 설립된 시스템 통합관리 계열사인 한화S&C를 통해 MRO 사업을 진행해왔다. LG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검토 작업에 돌입했다. LG그룹 관계자는 “MRO 사업에 관해 다각도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므로 사회적 합의가 도출되는 대로 그 방향에 맞춰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려감도 존재한다. 일부 중소기업과 거래에서 불공정한 관행이 있을 수 있지만 이 때문에 자칫 합리적인 조달 거래를 정착하겠다는 MRO가 갖는 근본 취지조차 훼손될 수 있다는 분석 때문이다. 산업계에서는 “MRO는 이미 선진국에서는 앞서가는 유통 모델로 주목받는 상황”이라며 “이번 사태가 MRO 산업 자체를 부정하는 부작용으로 이어져 효율적인 조달구매 서비스 자체가 퇴보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사업 포기나 매각보다는 상생 차원에서 비즈니스 모델 보완이 더욱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라는 진단이다.
강병준기자 bjkang@etnews.com